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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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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등록자 유영희 조회수 1240

2017년 예산안 통과여야 없는 지역구 예산 끼워 넣기

                         * 이정현, 없던 사업 신규 편성

                         * 최경환·정진석·박지원 등 지역구 사업 예산 대폭 증액

 이것은 2016123일 경향신문 김한솔 기자가 쓴 기사의 헤드라인을 옮겨 적었다.


 이 꼴 보려고 여성장애인 인권운동 했나 싶어 자괴감 들고 괴롭다
. 요즘의 심정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상임대표 재임 3년 동안 쥐꼬리 예산의 증액과 여성장애인 정책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한 해도 빠짐없이 들었던준다, 못준다, 줄인다, 합친다, 없앤다.’는 말 앞에 사람인 이상 가만히 앉아 당할 수만은 없었다.


 전국
120만 여성장애인을 위한 2017년 정부 예산은 16억에 불과 하다. 이게 대체 몇 년 전에 책정된 예산인지도 모르겠다. 복지재정효율화, 유사중복 등등을 운운하며 통합과 삭감의 칼날이 향한 곳은 취약계층과 소외계층이다. 그 중의 대표 계층은 여지없이 여성장애인 집단이다.


 증액이 필요하다고 올해도 여성장애인들은 길 위에 섰다
.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하고, 국회 앞 1인 시위를 이어갔고, 전국 여성장애인들이 모여 집회를 하고, 국회의원들을 면담하며, 쥐꼬리가 조금이라도 굵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누군가 물었었다
. 이 예산이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라는 단체 예산이냐고……. 아니다! 정부 예산 중 여성장애인 사업 예산이 몇 십억 아니 몇 백억이 된다고 해도 한국여장연이라는 단체와는 무관하다. 전국 120만 여성장애인에게 소요되는 예산일 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서냐고 물을 것이다. 외치지 않으면 돌아보지도 않는 계층이 여성장애인이다 보니, 여성장애인 당사자 단체로서 이 땅의 모든 여성장애인의 완벽한 사회참여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나설 뿐이다.


 보기 좋게 무시당했다
. 절대적으로 안 되는 이유도 듣지 못한 체 없이 관심 하나 받지 못한 체 나가떨어졌다. 4005459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2017년 정부예산을 통과시키며, 지역구 예산을 대폭 증액시키고 심지어 없던 사업을 신규 편성까지 해내면서, 소수 약자 층인 여성장애인 예산 증액은 그저 당사자들의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고 말았다.


 입에 발린 소리는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
. 국회의원들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면 참 쉽게도 증액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누구는 굳게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막판에는 그 누구도 소수 약자 층인 여성장애인을 위한 예산은 돌아보지 않았다.


 쪽지 예산은 없고 증액에 대해 합의 할 수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갑질은 힘 있는 의원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 없던 사업의 신규 편성까지 용인하면서 120만 여성장애인을 위한 예산 3억 증액은 그리도 힘들고 어려운 과제였을까?


 이건 어렵고 쉬운 문제를 떠나서 관심의 차원이다
. 어느 한 지역을 위한 예산이라면 그 지역구 의원은 예산증액에 아마도 목숨을 걸다시피 했을 것이다. 여성장애인이라는 소수집단에 전국구 사업이다 보니 의원들이 목숨을 걸어봤자 크게 생색을 낼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국민적 차원의 예산이 아닌 출신 지역구만을 위한 생색내기 식 예산편성의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힘을 따라 증액 처리되던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다
. 관심이 있어야 미움은 생성된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그러기에 미움보다 더 독하고 악한 것은 무관심이다. 여성장애인은 이 독한 무관심의 섬에 갇혀서 산다. 무관심의 섬에 갇혀, 이 나중에 당신들도 한번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못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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