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장애학의 접근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장애학 학자들은 인문학적 접근과 사회과학적 접근의 두 가지 기본적인 접근법 중 하나를 따른다. 먼저 인문학적 접근은 사회 내에서의 장애를, 종종 개인화된 관점에서 주목하며, 무엇이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억압을 만들게 되는지를 고찰한다.
지금도 미국에서의 장애학 첫 수업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날 네 시간 내내 자신에게 있어서 장애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했었다. 그 수업을 진행했던 교수 두 분 중 한 분은 휠체어 여성 장애인이었고, 학생 중에도 장애인이 많았다. 그런데 그 때 필자 옆에 앉아 있던 중국에서 온 여성 장애인 유학생이 중국에서는 장애가 무엇이고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국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마찬가지인데 라고 생각하며, 장애인인 필자로서도 나에게 장애란 어떤 것인지 말한다는 것이 무척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필자도 그때까지 남들이 말하는-대개 비장애인이 정해 놓은-장애의 정의와 의미를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인문학적 접근과 과정을 통하여 장애에 대하여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도출해낼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접근법을 통하여 무엇이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억압을 만들게 되는지를 밝혀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고 또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지만, 왜 차별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밝혀내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나타나는 현상인 차별만을 고치려 한다면, 이것은 마치 병의 원인은 덮어두고 증상만 치료하는 것과 같다. 감기로 두통이 있다면야 진통제 몇 알을 먹는 것과 같은 대중요법도 좋겠지만, 고혈압으로 두통이 온다면 진통제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물론 필자가 여기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진통제 몇 알로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 동 법의 제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다녔지만, 다만 왜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차별․억압․편견 등이 생기는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사시(斜視)가 생겼는가가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겠지만, 그 부분은 다음에 일부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보고, 다음 접근법으로 넘어가보자.
또 다른 접근법은 사회과학적 접근법이다. 이러한 접근에서는, 장애를 하나의 사회 정치적 이슈로서 연구한다. 좀 더 사회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고찰하며, 재정이나 정치적인 권리 같은 것에 주목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장애계에서는 장애연금과 같은 생존권의 문제, 그리고 장애인의 인권과 같은 기본권의 문제를 한참 제기해 왔다. 장애인 운동의 발달 역사를 보면 대개 생존권이 해결된 다음에 인권을 이야기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주장들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며, 마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도 그러했고,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인 것 같다. 여기에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 좀 하고 왔답시고, 발달단계의 세 번째라 할 수 있는, 고정관념과 억압과 같은 관점의 문제를 가지고 인문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다니니 필자도 역동적인 한국에 살고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성질 급한(?)한국인인 모양이다.
어쨌든 사회과학적 접근이 장애인 개인보다는 전체를 다루는 법률과 정책에 주목한다고 단순하게 일단 생각한다며, 이 접근법을 가늠하는데 좀 도움이 될 성싶다.
그러면 어떤 접근법이 우리나라에서 적절한가? 필자는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양시론적 입장을 취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없으면 무슨 근거로 장애인 차별을 막고 차별당한 장애인의 권리를 구제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했고 그래서 소송이 제기된다 치더라도, 판사가 그것은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하고 또 그것이 일반대중에 의해 당연시된다면 강력한 법률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이것과 유사한 경험을 지하철 편의시설과 관련된 소송에서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사회과학적 접근과 인문학적 접근은 모두 필요한 것이다.
사실 지금 이들 두 접근법들은 장애학의 선진국에서는 아주 근접해져 있으며, 이들 관점들은 혼합되어 있다. 그래서 개개의 학자가 어떤 접근을 취하든, 장애학은 다양한 학문 영역과 주제를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호에 장애의 정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난 후, 그 다음 호쯤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