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슈>
왜 장애학이 필요한가?
-조한진(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장애학에 대해 소개함에 있어 ‘장애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선 답하는 것이 순서이겠으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앞으로 진행될 본 ‘기획이슈’ 코너의 큰 주제이므로 오늘은 ‘장애학은 장애에 관한 학문이다’라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대신에 장애학의 필요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한다. 또한 ‘장애’가 무엇이고 누가 ‘장애인’인가에 대한 이야기 역시 앞으로 할 것이므로 오늘은 그저 비장애인이 상식적으로 연상하는 ‘장애’와 ‘장애인’의 개념을, 불만스럽더라도, 일단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개념을 사용하든 장애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에서 차별받고 억압받아왔다. 그래서 장애인은 여성이나 빈곤층과 같이 소수집단을형성한다. 그러나 여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요보호여성의 문제를 넘어 모자복지를 비롯하여 전체 여성을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그리고 빈곤층의 문제에 있어서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최저생계비 이하에서 생활하는 국민기초생활제도 수급자가 약 160만이라 하여 양극화의 문제와 함께 빈곤층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은 등록 장애인만 해도 240만이 넘고 그래서 엄청난 수의 소수지만, 언제나 중증장애인 등 장애인 중 어느 일부만 이야기할 뿐 장애인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찾아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어려움이 소수집단의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장애인이 차별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에 관한 학문 역시 홀대받아왔다. 장애와 장애인에 관한 주제는 모든 학문에서 두루 활발하게 다루어진 적이 결코 없으며, 혹 다루어졌다 하더라도 특정인에 의하여 특정 분야에서였다. 문학이든 영화든 텔레비전이든 장애를 다루는 사람도 다루어지는 사람도 특정 소수였다. 그 분야라는 것도 역시 의학·재활학·사회복지학·특수교육학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병원이나 시설 또는 특수학교에서 행해지는, ‘정상인’이 주도하는 ‘비정상인’을 치료하기 위한 학문이었고 거기에서 근거한 서비스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서 장애인은 감정과 영혼을 가진 그리고 의지를 가진 개인이 아니고, 분류되고 관찰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장애인의 목소리라는 것은 그저 비정상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수정되고 치료받아야 할 뿐이었고, 또한 결코 장애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어느덧 장애인에게도 내면화되어 장애인 스스로도 자신을 바라볼 때 비장애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은 ‘완전한 육체’라는 허상만을 그리며, 따라서 ‘교정’될 수 없는 자신의 육체에 낙담하고 포기한다. 이런 상태에서 비장애인이 하는 어떤 행동도 장애인을 위한 것일 수 있으므로 정당화될 수 있으며, 의외로 장애인을 이해하는 듯 보이는 비장애인 전문가에 대해서는 그저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은 서비스를 받아야 할 존재이고 비장애인에게 봉사(serve)할 수 있는 존재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며, 다만 프로그램에 집어넣어져야 할 대상일 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애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어엿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이 기능을 하든 못하든, 장애인의 눈으로, 치료하고 재활시키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교육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다양함의 일종으로 장애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이론과 모델과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애학이 가지고 있는 기본 철학이자 장애학의 필요성이다.
마지막으로 무엇이 장애학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의학·재활학·사회복지학·특수교육학 등이 장애학과 만날 수 없느냐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물론 장애학의 테두리 안에는 여러 학문적 접근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장애와 장애인을 다루는 여러 학문이 단순히 한자리에 모였다고 의미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부터 기존의 관점과는 달라야 한다. 그러므로 ‘장애’와 ‘학(문)’이 별개가 아니고 ‘장애학’이 하나의 학문 분야이다. 따라서 위 학문들이 장애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용의가 되어있지 않는 한, 장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만 가지고는 절대로 장애학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다음호에서는 어떻게 장애학이 발전했는가를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