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슈>
장애학의 원칙(1)
- 조한진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번 호부터는 장애학의 원칙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까 한다. 첫째 원릭으로, 장애학은 사회적 ㆍ역사적ㆍ문화적 관계 내에서 장애를 분석한다.
이 중 사회적ㆍ문화적 관계 내에서 장애를 분석하기 위해, 첫째로 장애학은 장애에 관한 전통적인 의료적 모델을 넘어선, 진보적인 연구ㆍ개입 패러다임을 채택한다. 지지난 호에서 장애의 개념적 모델을 설명하면서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을 대비시킨 적이 있고, 지난 호에서는 이런 장애 모델에 기초해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국제연합의 장애 정의를 평가하였다. 이렇게 장애 모델과 정의에 대해 다소 따분한 이야기를 논했던 것은, 이번 호에서 장애학은 의료적 모델을 배격하고 사회적 모델을 채택한다는 위의 원칙을 이야기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아직 장애학에 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장애학에서의 장애에 관한 관점에 의료적 모델을 포함시켜 말하곤 한다. 필자가 사회복지학의 한 학술자에 논문을 투고하면서 의료적 모델은 장애를 바라보는 한 관점일 뿐 장애학의 관점을 아니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필자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미 미국 등에서는 당여한 이야기를 단지 한 학자의 주장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필자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회적ㆍ문화적 관계 내에서 장애를 분석하기 위해서, 둘째로 장애학은 개인과 환경 사이에서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서 장애 경헙을 연구한다. 본 칼럼에서 누차 강조했듯이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손상을 가진 사람을 사회가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 여부 또한 불공평한 환경에 대해 그 손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항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셋째로 장애학은 장애인의 광범위한 시민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사회정책을 개발한다. 지금까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정책은 ‘장애인복지정책’이라는 이름하에 장애인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 도움의 수준이라는 것이 장애인에게 충분했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충분하지도 않으면서 이러한 정책은 장애인을 항상 도움을 받는 위치에만 있게 했다. 그러다보니 그러한 도움이나마 없으면 당장 생존이 위태로운 장애인들로서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장애인의 생존의 문제가 더 이상 ‘혜택’이나 ‘시책’이 아닌 ‘시민권’과 ‘인권’의 문제로 접근되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장애학의 입장이다.
넷째로 장애학은 문학과 영화 등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통념(미신)ㆍ고정관념, 미에 대한 가치관 등에 주목한다. 한 번, 장애인이 등장하는 동ㆍ서양의 문학을 보라. 우리나라 소설에서의 ‘벙어리 삼룡이’와 ‘백치 아다다’ 그리고 서양에서의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장애와 장애인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비교해보면, 여러분은 아마도 동ㆍ서양의 지리적ㆍ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관점이 한결같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어떠한가? ‘미녀와 야수’에서처럼 장애인은 괴물이며 미녀 비장애인의 사라이 필요한 존재이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모금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은 도움이 절실한 불쌍한 사람들이다. 필자가 이런 의식으로부터 몇 년 전에 월간 ‘말’지에서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이 종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꿋꿋하게 그 방송이 계속되는 것을 보며, 일개 교수의 한계를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장애 운동이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기를 소원하게 된다.
그러면 장애를 둘러싼 사회의 통념(미신)과 미디어에 의해 재생되는 그러한 고정관념들이 장애인을 무섭고 더러운 혹은 불쌍한 존재로만 묘사하는가? 오히려 또 다른 극단적인 관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장애인을 신비한 또는 어떤 초인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다. 영화 ‘레인맨’에 나오는 장애인을 보라. 물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위 ‘서번트’들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또한 위대한 장애인을 말하면서 우리는 헬렌 켈러를 흔히 거명한다. 물론 그녀는 대단한 인물이다. 그러나 비장애인 중에서도 그러한 대단한 인물이 몇 명이안 되겠는가? 그러한 대단한 사람을 예로 들며 장애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그러한 외압은 어느덧 헬렌 켈러를 장애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닌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하나로 전략시켜 버렸다.
마지막으로 미에 대한 관점을 보자. 매스 미디어에 나오는 선남선녀들은 어느덧 대중의 우상이 되었고, 성형수술시 본이 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해, 성형기술이 거기에 못 미쳐 망정이지 기술만 된다면 우리나라는 비슷한 사람만 돌아다니는 무서운 나라가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이 확산되어 미스코리아 신드롬에는 어느 정도 제동을 걸었으나, 이러한 반항적 관점은 장애에 대한 시각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우리 사회가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외모만 중요시하다보면 어떤 장애인은 골방에서만 생활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회적ㆍ문화적 관계 내에서 장애를 분석하기 위해 장애학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다음 호에는 장애학이 어떻게 역사적 관계 내에서 장애를 분석하는지를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