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2
‘도가니’광풍, 그 이후
- 이희정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 부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지하철을 타고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기사 하나 “광주 인화학교 피해자 국가상대 소송서 패소 확정” 불현듯 2011년도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영화 ‘도가니’(공지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극화)가 2011년 9월22일 개봉하고 난 뒤 연일 방송에서는 이와 관련된 뉴스가 보도 되었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인터뷰 전화가 쇄도했다.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은 2005년 6월 한 교직원이 광주여성장애인연대 부설 광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며 2000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교장, 행정실장을 포함한 가해자 6명이 초·중·고등학교 학생 9명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사건이다.
이에 따라 성폭력 가해자 6명이 형사 고발됐으며, 교사 2명은 성범죄 행위의 은폐·축소와 관련된 혐의로 추가 고발됐다.
하지만 고발된 가해자 6명 중 4명이 실형선고를 받고, 2명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성범죄 은폐 교사 2명도 처벌에서 제외됐다. 특히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고 복역하던 교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또 집행유예 3년이 되는 등 가해자 2명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영화 도가니 개봉 이후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는 2011년 9월25일 다음 아고라에 5만 명의 서명을 목표로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죗값을 치러야한다”며 재조사를 요구하는 내용의 이슈청원을 올렸고 2011년 재조사를 촉구하는 국민 서명운동이 일어나 ‘광주인화학교 성폭력사건 진상위원회’가 꾸려졌으며 재수사를 진행하였다.
드디어 2013년 4월25일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 광주인화학교 행정실장 김 모 씨에 대해서 1심 재판부(광주지방법원)는 징역 12년, 2심 재판부(광주고등법원)는 8년(비슷한 시기 두 차례 실형 선고(김 씨와 이 모 생활교사가 구속돼 각각 2006년 항소심에서 징역 1년과 2년을 선고 받음.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 교장은 지난 2009년 췌장암으로 숨졌음.)를 받아 복역했다는 등의 이유로 4년을 감형. 김 씨는 2000년~2004년까지 7살~20살 청각 장애 학생 6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혐의.)이 선고 되었으며 대법원이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고 10년 동안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도록 했다.
또한 위의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계기로 일명 도가니법(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법률안이 긴급하게 처리되어 2011년 11월 17일 시행되었으며 개정 법률에 따르면 장애인과 13세 미만의 아동을 성폭행했을 경우 7년, 10년으로 형량을 대폭 늘렸으며, 무기징역까지 범위를 넓혔다. 또한 장애인 여성ㆍ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범죄의 공소시효도 폐지됐다. 아울러 장애인 보호ㆍ교육 시설의 장(長)이나 직원이 장애인을 성폭력하면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형이 가중된다.
그리고 장애인 성범죄와 관련해 솜방망이 처벌의 근거가 돼 왔다고 비판받았던, 피해자가 '항거불능'일 경우에만 성폭력으로 인정하는 조항도 삭제했다. 기존 법에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자를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이라고 돼 있지만, 이를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여자에 대해 강간죄를 범한 사람'으로 고쳤다.(그러나, 2013년 6월1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 4항의 내용이 바뀌면서 항거불능 조항과 더불어 현재는 항거곤란이 추가 된 상태) 또한 2012년 8월부터는 교장, 교사 등 업무상 지위를 이용해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경우 피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된다.
결국, 2012년 광주 인화학교 사건의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의 과실과 장애인 교육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 등을 이유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2015년 11월 8일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최근 광주 인화학교 피해자 7명이 정부와 광주시청, 광주 광산구청 등 3곳을 상대로 "4억35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소송의 상고심(2015다223756)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배상 청구권이 성립된 것은 사건이 발생한 2005년인데 소송은 소멸시효 5년이 훨씬 지나서야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또 "수사기관이 이 사건에서 통상 발생하는 수사상의 판단착오의 범위를 넘어 수사규칙을 위반했다거나 사건을 부당하게 장기화시켜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도록 했다는 원고들의 주장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위의 내용은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총 정리한 것이다.
2000년 실제 사건이 일어나고 2013년, 2015년 광주인화학교 형사, 민사 사건이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된 사안을 지켜보면서 세 가지 정도의 의문이 남는다.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고 그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져야 했던 사안이었지만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기까지 15년이란 긴 시간을 돌아가야만 했다.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의 합당한 처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로 인한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또한 일명 도가니법이 긴급 개정되고 사회적으로 큰 파란을 일으켰지만 그 이후에도 제2의 도가니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세 번째, 영화 도가니처럼 이슈가 촉발 될 때는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품처럼 사라지는 무기력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2011년이나 5년이 지난 지금이나 현장에서의 느끼는 온도 차이는 별 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가해 행동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피해를 회복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에서 10년 이상 줄기차게 주장했던 항거불능 조항이 2011년 삭제되고 2013년 이후 재개정에서 ‘신체적 ·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사람을 간음하는 행위로 다시 수정되었다. 기존 재판부에서는 ’항거불능‘은 저항의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함을 의미하고 있었다고 하여 이번 2013년 개정은 항거불능 외에 항거 곤란을 추가함으로써, 저항의 곤란함이 ’현저한‘ 수준에 이르지 않더라도 장애인 준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완화한 것이라고 평가 하였으나 항거곤란에 대해서도 결국 입증 책임의 문제가 피해자에게 있기에 언급조차 되기 어렵고 예전과 다름없이 ’항거불능‘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어 기소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기에 올바른 판결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정확한 통계를 통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한 도가니로 인해 장애인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폭발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지원체계가 마련되었지만 장애에 대한 이해와 성폭력 피해자들의 특수성이 오롯이 고려되지 못한 채 사건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장애인 성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고루하지만 한가지로 귀결된다. 결국, 국민들의 인식이 변화하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성폭력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내 주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간 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의 생각이 모여 가족을 이루고 지역을 구성하며 사회를 변화 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변화된 한 발자국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게 될 것임을 절대로 잊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곧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