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슈> 장애학의 원칙(3)
- 조한진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회에 걸쳐서 장애학의 원칙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지난 2회 동안, 장애학은 사회적ㆍ역사적ㆍ문화적 관계 내에서 장애를 분석한다는 첫 번째 원칙에 대하여 말하였고, 오늘 그 나머지 것들을 말함으로써 장애학의 원칙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한다.
두 번째 원칙은 장애학은 여러 다른 학문 분야의 접근법을 통합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장애를 다루는 학문인 사회복지학ㆍ특수교육학ㆍ재활과학 뿐 아니라 문화ㆍ예술ㆍ사회학ㆍ심리학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장애에 접근한다. 물론 첫 번째 원칙을 지키면서 접근해야 하며, 장애를 연구해왔던 전통적인 방법에 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에 있을 때 영문학ㆍ미국학ㆍ영화학 등을 전공한 교수님들러부터 장애 관련 과목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언제 그런 날이 오려나 부럽기만 했었다.
세 번째 원칙은 참여적 연구 접근법을 결합한다는 것이다. 참여적 연구라는 것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참여적 연구에는 시스템을 연구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데 있어서 그 시스템 내의 구성원과 협력하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쉽게 말해서, 장애 분제를 연구한다면 장애인이 더 이상 단순히 연구 대상만이 아니라, 그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서 연구자와 장애인이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협력은 좋은 연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연구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러므로 참여적 연구는 연구 과정의 한 중요한 측면으로 ‘서로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협력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연구를 위하여 또 학위를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나서, 목적 달성을 하고 난 후에는 다시 옛날의 비장애인 연구자의 고고한 위치로 돌아가는 경우를 바라볼 때, 이러한 연구 접근법은 참으로 연구자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세를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한 발 더 나아가서 해방적 연구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연구에 있어서 과거에 그저 연구 대상자였던 장애인이 아예 리더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연구에서 지적 장애인이 리더가 된다고 상상해보라. 필자로서도 이러한 연구가 어떤 장애의 경우에 쉽지만은 않으리라 짐작하지만, 정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멋진 연구가 되리라 본다.
마지막 원칙으로 장애학에서는 장애인과 학계ㆍ전문직이 통합ㆍ융화한다. 이는 세 번째 원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장애인이 학자와 전문직에, 그리고 학자와 전문직이 장애인의 세계에 어우러진다는 이야기이다. 장애 관련 학회나 전문가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보면 의외로 장애인을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모임은 때때로 근사하고 우아한 장소에서 말끔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하여’ 또는 장애인을 어떻게 하면 ‘도울까’를 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학자와 전문가는 장애인더러 ‘나를 따르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장애인은 ‘그래, 너 잘났다’하고 이야기하는 격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렇게 ‘따로국밥’인 형태는 장애인에게도 또 학계난 전문직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자와 전문가는 그들대로 장애인의 생생한 경험을 들을 수 없고 현장 활동가들의 지혜를 배울 수 없다. 그 현장 활동가들 중에는 장애인으로서 또 장애인과 함께 투쟁하며, 삭발식을 하고 단식농성을 하며 천막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 심지어는 투옥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 존경스러운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이런 현상은 장애인들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다. 학자들의 이론과 전문직의 기술은 장애 운동의 논리적 뒷받침을 제공할 수 있고, 난관에 부딪혔을 때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미국에 있을 때 장애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가 부러웠었지만, 그 중 한 가지가 3박 4일 동안 학회를 했는데, 그렇게 장애인이 많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현장 활동가였다. 그 때 주제가 학계와 현장이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결론은 학자들이 연구를 통하여 활동가들을 이론적ㆍ실천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 결론은 교수가 된 지금의 필자로서도 항상 명심하고 있는 부분이며, 또 이것이 부족하지만 장애학 칼럼을 지금까지 연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다음 회에 마지막 칼럼을 쓰며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