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2 장애등급제 폐지와 향후 대책
- 이형숙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장애등급제의 역사는 1981년에 ‘심신장애자복지범’이 제정됨에 따라 1982년 장애등록제도가 시범적으로 실시되었고, 1988년 11월부터는 전국적으로 장애인등록제도가 시행되고, 1989년 ‘장애인복지법’ 전면개정을 통해 일본의 방식과 같은 오늘날의 장애등급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장애인복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으로 등록을 해야 하며, 장애인 등록은 의학적 기준에 따라 15가지 장애유형에 1급부터 6급까지의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장애유형과 등급을 나누어 등록을 하고 있는 장애등급제는 한국과 일본에만 고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장애인의 입자에서는 장애등급기준이라는 의학적 장벽, 거기에 소득기준이라는 2중, 4중의 장벽을 통과하여야만 사회서비스에 진입할 수 있도록 된 것이다.
이렇게 ‘관주도 일제등록’, ‘선등록 후서비스’라는 행정편의적 방식, 의료적 기준만으로 된 장애(등급)판정기준이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도에 부응하지 못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동안 무려 25년 동안이나 사회서비스의 절대기준으로 작동해왔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우선적으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포장하기까지 했다.
정부가 장애등급제를 옹호하는 또 하나의 논리는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한 제도라는 것인데, 이는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무시무시한 논리이다. 정부가 소위 ‘가짜 장애인’을 잡아내고, 장애등급판정의 형평성과 객관성을 높이겠다며 ‘장애등급심사’를 강요하면서, 오히려 예산삭감을 위해 (중증)장애인을 축소하는 것도 손쉽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에 있어 ‘의료적 기준’, ‘형평성’, ‘효율성’ 등의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일 수 있는지는 장애등급제 이외에도,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서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다. 2006년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2007년 제도시행을 약속한 정부는, 당초 다른 장애인복지제도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저소득층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다. 중증장애인들이 23일 동안이나 집단단식투쟁을 하고 나서야 소득기준을 없앨 수 있었지만, 장애등급기준과 의료적 기준의 서비스판정기준(인정조사표)을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장애등급제 폐지 문제는 2012년 총선과 대통령선거에서 장애인계의 최대 이슈로 부상되었다.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ㆍ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광화문 해치마당 지하에서 무기한 농성투쟁에 돌입하여 현재 670여일이 지나도록 투쟁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미 승리를 한 것과 다름없다. 장애등급제는 벌써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장애등급제는 개별의 복지제도다 아니라 한국의 장애인복지의 구조를 관통하는 문제이므로 단일한 사안으로 볼 수 없으며, 문제에 올바로 접근한다면 오직 장애인복지구조의 근본적 변혁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임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향후 대안은 장애등급제가 한국 장애인복지의 구조로서 작용하였다면, 우리는 근복적 구조의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 장애등급제를 비롯한 구시대적 내용으로 가득한 장애인복지법을 폐지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선언하고 권리의 실현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법제정이 필요하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장애를 사회적으로 정의하고, 장애등급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고, 개인의 환경과 욕구에 따른 개인별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이 그 핵심적 방향이다. 또한 장애등급제가 그동안은 은폐해온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들을 명시하고, 그것들이 장애등급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 따위의 임의의 기준에 의해 절대 잘려나가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장애등급제만 없애는 것은 뜻밖에 간단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장애등급제는 장애담론과 복지의 이념과 구조에 관한 모든 것에 연관된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함께 장애에 관한 모든 것을 재정의, 재구조화해야만 진정으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장을 아시나요? 농성 이후 장애등급제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장애인들의 영정이 놓여있다.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하여,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 받을 때까지 그들의 넋과 우리의 분노로 함께 투쟁 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등급제 폐지의 대안과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