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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장연 웹진

57호

57호
(이야기마당2) 장애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란?

이야기마당 2

장애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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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숙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부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상담원

 
저는 저시력시각장애인입니다. 저시력시각장애인이라니. 그냥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저시력이라고 수식어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잔존시력은 있는 것 같은데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구나..라고 짐작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황반변성이라는 안과질환으로 중심부의 시력은 전혀 없으며(전혀!) 주변부의 시력만 잔존해 있어 두 눈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시선을 맞춰 사물을 봅니다. 그러다 보니 제 눈에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저만의 블랙홀이 있습니다. 중심부에 시력이 없다보니 사물을 보기 위해 시선을 맞추다가(특히, 달리는 버스나 기차 등 속도감이 있는 사물일 경우에는 더욱 심하죠.) 중심부로 사물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고 깜깜한 허공만이 남게 됩니다. 그러다가 일초, 이초, 삼초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던 그 사물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저만이 가지고 있는 블랙홀을 통과하여 사물이 제 시선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감격스럽죠. 사라졌던 것이 다시 나타났으니까요!

 
저도 이러한 제 눈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 눈의 특성에 적응되니 이제는 제 눈의 블랙홀을 즐기기도 하며 아직은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잔존 시력이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저시력시각장애인으로서 생활하면서 때로는 투정이 아닌 투정이 나올 때도 많습니다. 저는 제 시력의 특성으로 인해 작은 글자, 자간이 좁은 글자, 줄과 줄 사이의 간격이 좁은 문장의 글자 등은 절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저시력시각장애인인 제가 사단법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부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서 근무하면서 이러저러한 어려움 중에서도 특히 문서와 관련된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저의 장애를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해주시는 소장님과 활동가 선생님들의 정서적 지지와 적극적인 지원, 더불어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지원해주는 보조공학기기가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저에겐 심리적 지지와 안정이라는 엄청난 자원과 보조공학기기라는 물리적 자원이 있어 성폭력상담소의 상담원으로서 불편함 없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제가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경우에는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확대프로그램을 이용하고 문서를 봐야 할 경우에는 노인 및 저시력제품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휴대용 확대경(센스뷰라고 합니다)을 사용하여 문서를 봅니다.)

  그러나 사무실을 벗어난 곳에서는 저는 절대적인 시각장애인이 되어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문서를 볼 수 없지요. 물론, 제가 센스뷰를 지참하면 일일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문서를 확인할 수 있으나 제 센스뷰를 지참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저와 같은 저시력시각장애인들이 관공서나 경찰서 등을 방문하여 문서와 관계된 행정업무를 보게 될 경우에는 어떨까요?

 
같은 저시력시각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시각의 특성으로 인해 서로 원하는 것은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움을 원하는 지점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저시력이기 때문에 저시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문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보조공학기기가 관공서나 경찰서 등에 비치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특히, 경찰서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어떠한 사건의 중심으로서 자신의 사건을 진술하거나 변호하게 되어 수사관에 의해 작성된 조서가 자신이 서술한 것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하는 경우, 시각장애인이라면 제 3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라면 문서의 글자(시각장애인들은 이것을 묵자라고 합니다)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점자나 컴퓨터의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야만 가능합니다. 저와 같은 저시력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묵자를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보조공학기기가 비치되어있다면 제 3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충분히 확인이 가능합니다. 자신의 진술한 내용에 대해 자신이 아닌 제 3자나 수사관의 입을 빌어 확인해야한다는 것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현대사회는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어 우리나라는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노화로 인한 신체능력감퇴, 시력 및 청력의 저하, 판단미숙 등 신체퇴화로 인한 다양한 노화는 장애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노안으로 고생하는 노인 분들에게도 센스뷰처럼 글자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제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장애인에게 편리한 세상은 노인 분들에게도 편리한 세상입니다. 장애인-장애를 선택하진 않았으나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도 노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주류와 비주류로 구분하여 할 수 없는 능력에 대하여 차별하는 대신에 할 수 없는 부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회구조적인 지원책을 모색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저는 사회구조적인 지원책을 모색함과 동시에 장애유무와 관계없는 통합, 장애유형과 관계없는 통합을 희망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실감하는 아픔 중에 장애인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도 장애 유형을 따지면서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장애인보다도 더 높은 장애 감수성과 공감을 가지고 있는 비장애인도 있습니다. 장애감수성과 공감은 장애 유무나 장애유형과는 관계없는 것 아닐까요? 장애 유무나 장애 유형을 따지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머리를 맞대어 불편함을 지원해줄 수 있는 지원책을 모색하는 것이고 모색한 지원책을 바로 실천으로 옮기는 강력한 추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시리도록 청초한 가을날 장애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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