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슈
여성장애인건강권을 논하다
- 오화영(글로벌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2015년 12월 29일 제정된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은 제1조 목적에 명시되었듯이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지원, 장애인 보건관리 체계 확립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사정을 규정하여 장애인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은 지금까지 장애인을 ‘아픈’사람으로, 재활치료의 대상으로 간주했던 것과 달리 장애인의 건강을 권리 차원에서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법률의 제 3조 3항에 따르면 건강권이란 ‘질병 예방, 치료 및 재활, 영양개선, 재활운동, 보건교육 및 건강생활의 실천 등에 관한 제반 여건의 조성을 통하여 최선의 건강상태를 유지할 권리를 말하며, 보건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포함’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법률 제 4조)로서 장애인의 건강권 실현을 위하여 장애유형과 정도, 모성보호, 성별 등의 특성을 고려할 것을 명시한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장애인의 건강은 여성정책 뿐 아니라 장애인정책 그 어디에서도 논의된 적이 없다. 단지 여성장애인의 건강은 임신, 출산 등 모성보호 지원에 국한되어 다루어졌을 뿐이다.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자료에 따르면 성별에 따라 장애인의 건강상태가 상이하게 나타난다. 여성장애인은 남성장애인에 비해 만성질환이나 합병증에서 높은 비율을 보이며 주관적 건강상태나 정신건강면에서 낮은 건강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여성장애인과 남성장애인의 건강상태에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여성장애인의 건강은 성별화된 사회제도,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 등에 대한 통합적 관점을 통해 접근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2017년 12월 30일 관련법의 구체적인 시행조항들에 여성장애인의 건강권에 대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일이다. 이와 관련 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여성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건강과 삶에 대한 통제력과 결정권을 가져야 하며 자신의 건강에 대한 알 권리 차원에서 장애 유형에 따른 장애진행에 대한 안내, 안전사고 예방교육 등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장애인건강권 교육은 여성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그리고 활동보조인도 그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아울러 의료진 및 병원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건강권 교육을 하는 경우 젠더와 장애에 대한 의식개선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둘째 여성장애인의 건강은 신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부터 자존감을 강화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여성장애인의 자조모임 활성화, 자존감 회복을 위한 상담프로그램, 의식교육 등이 요구되는 바이다.
셋째 현재 여성장애인의 건강 관련 정책은 임신과 출산 지원서비스에 국한되어 있다. 임신과 출산 지원 서비스는 여성장애인의 생애주기별 건강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성장애인의 생식건강은 미혼 또는 중장년 여성장애인의 생식건강을 고려하여 산·전후관리가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장애를 고려한 재생산건강이 논의되어야 한다. 장애유형을 고려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여성장애인에게 제공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장애인을 위한 전문 산부인과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산·전후 관리 뿐 아니라 여성건강검진까지도 전담하는 전문병원과 전문 의료진 확보가 필요하다.
넷째 임신, 출산, 양육과정의 여성장애인은 장애등급에 상관없이 필요한 때 활동보조서비스 이용 및 장애인 콜택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도록 돌봄 노동의 서비스 지원과 이동서비스 보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섯째 여성장애인은 2차 장애나 합병증에 대한 부담과 걱정을 안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라 해도 수급자를 제외하고는 의료비 지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수급자가 아닌 여성장애인들 역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감안하여 의료비나 치료비 지원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특히 고비용 수술이나 고비용 검사 등은 경제적 조건을 반영하여 차등적으로 지원하는 등 다양한 지원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장애인의 2차 장애나 합병증을 예방하는 운동 프로그램 및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일상의 삶 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접근성을 고려할 때 복지관이나 보건소 뿐 아니라 지역 내 장애인단체에서도 함께 협력하여 운영한다면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아울러 정보접근성이 부족한 여성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홍보방안도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장애인의 건강권은 장애와 젠더를 모두 고려할 때 비로소 실현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여 여성장애인 건강권 보장을 위한 실효성 있는 시행령이 마련되고 구체화될 때 비로소 여성장애인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