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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여성 살해’사건으로 본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현주소
- 김현수(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지난 5월 17일,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 의해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이번 사건은 남성중심사회 속에 오랫동안 일상에 존재해 온 여성에 대한 편견, 무시, (성적) 대상화, 제도적 차별, 폭력이라는 젠더폭력의 징후적 표출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혹은 증오범죄(hate crime)’이자 ‘여성 살해 범죄(femicide)’이다.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여성들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 일상화된 젠더폭력인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0.651(1에 가까울수록 평등)로, 조사 대상 145개국 중 최하위 수준인 115위이다. 또한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비율 90.2%(경찰청, 2013)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 된 가운데 살인사건 피해자 중 여성비율 51%로 G20 국가 중 1위(UNODC, 2008)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국제적으로도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실정인지 낱낱이 드러나 있다.
‘여성 살해’의 본질은 젠더권력관계, 즉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인식이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신적, 물리적 폭력에 시달려 왔고, 살해당해왔다. 이를 젠더 불평등 문제로 인식하고 공감해 나가는 것이 또 다른 ‘여성 살해’를 막기 위한 출발선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강남 ‘여성 살해’ 사건이 그 간 일상적으로 발생했던 젠더폭력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5월 2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국에 혐오범죄는 없다”, ‘가해자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라고 주장하며 여성의 현실을 외면하고, 현장 경찰이 요청하면 의학적 판단을 거쳐 지자체장이 입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며, 당사자가 퇴원을 원해도 병원이 이를 거부하는 조치까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정부는 6월 1일,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으로 ▲CCTV 확충 ▲신축 건물의 남·여 화장실 분리 설치 의무 대상 범위 확대 ▲여성 상대 범죄자에 대해 법정 최고형 구형 ▲여성대상 강력 범죄자에 대한 가석방 심사 강화 등이다. 또한 ▲중증 정신질환자 조기 발견을 위해 조기 정신증이 처음 발병하는 청소년·대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기반 조기 발굴 체계 마련 ▲정신질환자에 대한 응급입원조치, 행정입원 요청 ▲정신질환이나 알코올 중독을 겪고 있는 수형자와 소년원생 등에 대한 전문 치료 시스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대책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혹은 증오범죄(hate crime)’이자 ‘여성 살해 범죄(femicide)’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한 ‘처벌 강화’ 중심의 근시안적 대책만을 남발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정신장애인에 대한 무분별하고 반인권적인 대책을 내놓아, 국가기관이 나서서 사회적 소수자를 사회적으로 격리, 배제하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지금 여성들은 가해자의 ‘처벌 강화’나 사후 조치에 대한 요구가 아닌 젠더폭력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젠더 폭력 발생 이후 사후 조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 젠더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젠더불평등 문제를 중요하고 시급한 사회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 또한 차별과 폭력 없는 사회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연대와 성찰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