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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장연 웹진

66호

66호
(여기, 지금, 우리1) 장애유형별 시리즈-시각장애여성의 인권①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여성장애인의 인권실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장애유형별 시리즈를 기획연재하고 있다.

장애유형별 시리즈-시각장애여성의 인권①
-전인옥(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상임대표)

1. 시작하는 말
 작년 가을, 필자가 대표로 재임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에서 인권강사 양성교육을 하고자 모 단체 인권활동가들과 사전회의를 가진바 있다. 다른 일정이 있어 당일 회의에 참석하기 어렵게 된 필자는 미리 커리큘럼을 짜서 우리 활동가들에게 넘겨주었는데, 그 커리큘럼 안에는 ‘청각장애 이해’, ‘발달장애 이해’, ‘정신장애 이해’ 등 유형별 장애 이해에 대한 교육을 4 회 포함시켰었다. 인권강사 양성교육은 처음이 아니었고, 예전에도 사전회의에서 충분히 합의했던 내용들인지라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는데 회의결과 보고를 받다 보니 너무도 의외의 얘기를 들어야 했다. “어차피 장애인권교육인데 유형별 장애에 대한 교육이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같은 장애인이라 해도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 소수의 장애인들은 자연히 소외받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시각장애인들은 다른 장애인들에 대해 흔히 말하기를, “저들은 눈을 보는데 무엇이 불편한가?”라며 우리가 가장 힘들고 불쌍한 존재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시각장애인들은 중증이라 해도 옆에서 안내하는 사람만 있으면 계단도 오를 수 있고,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데 중증지체장애인들이나 척수장애인들은 이런 것이 어렵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장애인권활동가들이 시각장애인단체에 강의를 나오면서 보내 주는 원고에 ‘표’를 여러 개 삽입했다면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회의결과 보고를 받으면서 매우 실망스러워 언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그런 논리라면 ‘여성인권’이니 ‘학생인권’ 혹은 ‘장애인인권’은 왜 나누어야 하는가?” 반문하고 싶었다.

 필자 또한 ‘가정폭력․성폭력상담사교육’을 받으면서 이와 유사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왜 똑같은 인간인데 남성과 여성을 분리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배하는 세상이고, 다수의 의견대로 정책이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그나마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여성들이, 그리고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게 되었으나, 장애인계에서도 아직은 여성장애인들의 설 자리가 없는 형편이다. 그 중에서도 감각장애인들은 더더욱 힘이 없는 장애인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이번에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에서 시각장애여성들에 대한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지면을 할애한 것이 내심 반가웠다.

2. 시각장애여성의 결혼
 여성의 문제를 논하는 만큼 결혼 이야기로 막을 열어야 할 것 같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3조 ‘가정과 가족에 대한 존중’ (a)항의 내용을 먼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장래 배우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 아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결혼 적령기의 모든 장애인의 권리가 인정된다.”

 오랜 세월 유지되어온 가부장제 사회는 첨단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결혼과 관련하여 딸을 둔 대다수의 부모들이 자신들을 죄인시하는 경향을 여전히 짙게 하고 있다. 시각장애여성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부분의 국내 시각장애여성들은 주로 같은 시각장애인끼리 상호결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역시 남자쪽 집안의 반대에 종종 부딪치곤 한다. 시각장애인대학생이 드물었던 옛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그 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는데, 남자쪽 부모의 입장에서는 “내 아들이 시각장애인이니까 눈의 장애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비장애인이 아니면 다른 경증지체장애인을 며느리로 얻기 원하는” 심정으로 반대하는 형편이다. 일견 그럴 듯한 논리일 수 있으나, 달리 생각하면 남남이 만나 상대 장애인의 아픔이나 불편을 얼마나 알아주고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필자의 경험 하나를 소개해 보자면, 10여 년 전 양쪽에 목발을 짚은 지체장애인 한 분과 잠시 거리를 걸은 적이 있었다. 장애의 특성상 필자는 자연히 그분을 잡고 반 보 뒤에서 일정한 속도로 걷고 있었으나 안내를 하시는 지체장애인분은 목발을 짚은 관계로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걸음이 빨라지기를 수시로 반복하였다. 게다가 한 손에는 음식물이 담긴 봉지를 들고 있었고, 필자가 그 봉지를 들어 주려 해도 굳이 사양하더니 결국 얼마 가지 못하여 음식물봉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15분 정도의 거리여서 필자는 쉬지 않고 충분히 걸을 수 있었으나 그분은 다리가 아파, 가다 쉬다를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다.

 물론 함께하다 보면 이런 정도의 장애 차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으나, 정말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유형간 장애의 차이로 인한 벽을 완전히 허물기는 어렵지 않을까싶다.

 때로는 정반대의 경우가 있기도 하다. 전맹남성의 부모가, 아들이 결혼과 무관하게 사귀는 여자친구가 저시력인 것을 알고 결혼을 종용한 경우인데, 여기서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하나 있다. 전에 아들이 맘에 두었던 여자친구가 전맹인 까닭에 결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여성은 야망과 이기심이 넘치는 남성시각장애인에게서도 결혼과 관련하여 차별을 받는다. 과거 시각장애인대학생이 드물었던 시절에 흔히 있었던 일로서, 고교 시절이나 재수할 때까지만 해도 동료시각장애여성을 사귀던 시각장애남성이 결국 결혼은 비장애여성과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자녀들의 육아와 교육을 위해서라도 상호결혼은 반대한다.”는 필자의 스승(시각장애남성)과, 은사님의 그러한 발언에 시각장애여성당사자로서의 울분을 참을 수 없었던 필자가 심한 언쟁을 했었던 예도 있는데,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몇 년 전, 지방으로 프로그램강의를 나간 자리에서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화제가 이어졌을 때 필자는 수강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사랑을 택하든 눈을 택하든 자유이기는 한데 반드시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아닌 나의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라고. 그 때 20 대 초반의 남자대학생이 “나는 눈을 택할래.”라고 서슴없이 발언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은근히 가슴이 시렸던 기억이 있다.

3. 맺는 말
 위에 소개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3조에 나와 있듯이 “장래 배우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 아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아직 우리 시각장애인계의 현실은 이에 대한 용납이 쉽지 않다. 똑같은 장애를 가진 상호결혼에서 시각장애여성이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어 있는 것은 결국 장애인당사자들이나 가족들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고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나라 시각장애여성들이 개인적인 역량강화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힘을 합쳐 세력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며, 각자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사결정을 분명히 하고, 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책임을 지며,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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