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는 마음
-강보라
내가 어릴 적 탄광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다이너마이트 사고로 지체 장애를 갖게 되셨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셨지만 사고 이후 아버지는 아주 두꺼운 돋보기안경과 한쪽 다리로 홀로 서는 방법을 배우셔야 했고, 어머니와 우리 세 자매는 자연스레 장애와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늘 우리 세 자매가 친구들에게 놀림 받을까봐 노심초사 하셨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학교에 선생님을 뵈러 오셨다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친구가 보고 알려주었다. 한걸음에 달려가 아버지께 반가움을 표시했다. “왜 왔으면서 딸은 보지도 않고 가?”라고 묻는 대답에 아버지는 “네가 창피할까봐 그랬지. 어떻게 알았어?”라고 답을 하셨다. 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버지 나름의 방법으로 우리를 배려해주고 계셨던 것이다.
지난 추석 때 아버지를 모시고 동생부부와 함께 가을나들이를 갔다.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우리는 우산을 쓴 사람들이 좁은 길을 지나며 미처 휠체어를 보지 못할까봐 한 사람은 앞서갔고, 휠체어를 끄는 제부가 우산 때문에 불편하지 않도록 아버지는 우산을 최대한 낮게 들어주셨다. 우리가 조금 느리게 지나가도 우리와 함께 걸었던 낯모를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해주었다. 쉼과 이동을 반복하며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배려 속에 가을나들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휠체어를 빌리는 동안 가죽 휠체어가 부족해서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점은 아쉬웠지만 행복해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에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