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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후견인 제도의 시행과 과제
- 조한진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비장애인 위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장애인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 중에 겪고 있는 어려움은 매우 다양하며 심각하다, 이에 정신적 장애인 등이 개인 신상의 보호와 재산의 관리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거론되어 온 것이 성년후견인 제도이다. 정신적 장애인 등에 대한 성년후견인 제도는 몇 년 전부터 몇몇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고, 마침내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ㆍ공포됨에 따라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바라보는 모델ㆍ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UN 장애인권리협약이 비준된 시점에서 본 제도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장애인 등의 권리 행사에 대한 성년후견에 의한 제한의 범위가 매우 넓다. 성년후견이 결정되고 후견인이 지정된 장애인 등은 “일용품의 구입 등 일상생활에 필요하다고 그 대가가 과도하지 아니한 법률행위”만 제외하고 기타 재산을 매매하거나 시설을 이용하는 등 모든 법적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법률행위를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없게 된다. 성년후견을 받는 피후견인은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약혼 할 수 있고(민법 제802조), 약혼을 한 후에 성년후견ㆍ한정후견이 결정되면 상대방은 약혼을 파기할 수 있다(제804조). 심지어 결혼도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할 수 있고(제808조), 이를 위반하면 후견인 또는 상대방이 그 혼인을 취소할 수 있다(제817조). 성년후견을 받는 장애인 등은 이혼도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하고(제835조). 배우자가 외도하여 낳은 자식에 대한 친생부인(親生否認)의 소(訴)도 후견인만이 제기할 수 있다(제848조). 성년후견인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하여도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인지(認知)하여 자식으로 입적할 수 있다(제856조). 입양을 하는 것도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제873조). 성년후견을 받는 사람은 재산관리 뿐 아니라 입원ㆍ퇴원, 요양원에의 입소나 거주 이전 등 신장에 관하여도 후견인의 간섭을 받고, 수술 등에 있어서 후견인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함으로써 치료가 강요될 수도 있다(제947조의2). 후견을 받게 되면 유언도 의사능력이 회복되어야 할 수 있고(제1063조), 증인도 될 수 없다(제1072조).
이에 반해, 우리의 민법이나 기타 법령에서 성년후견 또는 한정ㆍ특정후견을 받게 되는 소위무능력에 대한 기준ㆍ규정이 전혀 없고 이를 판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진단 등 판정의 절차에 대하여도 규정된 바가 없으므로, 가정법원이 시안에 따라 법관의 재량에 의하여 성년후견, 한정후견 등이 심판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볼 때, 많은 학자들, 법조인들, 전문가들, 장애인개발원, 심지어 국가인권위워회까지 개정 민법의 성년후견제도가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에서의 장애인의 의사능력을 조력하는 제도라고들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제도는 동 협약 제12조에서폐지할 것을 요구한, 의사결정의 대체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성년후견인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정신적 장애 등을 이유로 개인이 법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어떤 결정, 그리고 그러한 무능력의 결과로 개인의 대리인이 지명되어야 한다는 어떤 결정은 국내법으로 정해진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정에 의한 공정한 청문회 이후에만 내려져야 한다. 또한 능력이 문제과 되고 있는 그 사람에게는 변호사에 의하여 대리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이에 우리의 성년후견인 제도는 오ㆍ남용될 위험이 많은 제도이므로 이대로 시행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나아가 근본적으로 본 필자는 성년후견인 제도를 반대하고 이에 폐지를 촉구하는 바이다. 이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정신적 장애인 등이 처한 현실을 필자가 몰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왜 성년후견인 제도이어야 하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에 대해 재산 관리 뿐 아니라 ‘신상 감호’까지 장기간 동안 제공하는 시스템이 꼭 법원의 후견인 선임에 의해서만 출발되어야 하는지 다시금 처음부터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후견인의 지정은 장애 권리 운동의 시각에서는 중요한 윤리적ㆍ법적ㆍ실천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장애인이나 노인 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이라 분류되든지, 스스로의 결정을 할 권리는 도전받는 기타의 취약 계층에게도 또한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장애인이 자신이나 가족의 부담으로 자신의 권리를 제한 받는 아이러니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국가와 사회는 후견인의 활용에 대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후견제도가 장애인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제도가 아니라 다른 최소 제한적인 해결책이 추구된 다음의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