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슈>
여성장애인의 모성권 보호에 머물고 있는 건강권은 의미 없다.
-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
최근 장애계에서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 중 하나는 ‘장애인의 건강’에 관한 것이다. 이는 작년 말에 제정된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보장에 관한 법률> 덕분이다. 이 법률은 만성질환 및 각종 사고와 재해 등으로 장애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장애인의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장애의 관리 및 치료와 관련된 사회적 부담도 급증하고 있으나, 현행 장애인 관련 법률들은 장애인 복지와 관련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시스템과 인식이 부족하여 장애인의 건강권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성이 점차 대두되면서 이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이 법률에서 중앙정부가 장애인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책임성을 갖고 장애인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나 사업등 시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이 법률에서의 여성장애인의 건강에 대한 언급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단순히 이 법률뿐만 아니라 장애관련 법률에서 성인지적 관점의 부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나 특히 이 법률에서의 여성장애인의 건강은 기존의 법률과 같이 여전히 ‘모성보호’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모성경험은 임신 및 출산으로 파생되는 경험이지만 다중적인 관계와 의미를 포괄하는 경험이다. 과거에는 임신과 출산 등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치부했으나 최근 한국정부는 저출산 정책과 맞물리면서 사회적 이념과 가치 등으로 여성의 재생산권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장애관련 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장애여성의 모성보호 또는 ‘모성권’은 지금의 이 법률에서 말하는 ‘건강권’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서의 ‘모성보호’라는 법률용어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36조 2항에서는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모성보호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동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규정을 비교해 볼 때, 헌법에서의 모성보호에서의 ‘보호’라는 것이 모성에만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가 국민 건강권의 증진을 위하여 보건의료정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입법취지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허영, 1997; 권영성, 1995; 김은희, 2001). 따라서 현행 헌법상 ‘모성보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모성권’으로 권리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애관련 대표적인 법 중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등에서 이미 여성장애인의 모성보호, 모성권을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37조에서는 여성장애인과 신생아의 건강관리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 제33조에서는 모성권 영역에서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6조에서는 장애여성 특수성을 고려한 건강방안 마련과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을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미 기존 법에서 장애여성의 모성권은 보장받아야 하며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에서 어떠한 차별도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작년에 제정된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보장에 관한 법률>에서의 장애여성의 의료접근성 보장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에 이미 명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동 법률에서 추가적으로 젠더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은 장애인의 ‘건강권’에 대한 해석과 실천영역이다. 동 법률에서의 ‘건강권’에 대한 개념정의는 제3조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건강권”이란 질병 예방, 치료 및 재활, 영양개선, 재활운동, 보건교육 및 건강생활의 실천 등에 관한 제반 여건의 조성을 통하여 최선의 건강상태를 유지할 권리를 말하며, 보건과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젠더관점의 “건강권”에 대한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성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독특하게 경험하는 건강문제로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사회적 성 때문에 여성에게만 만연하며, 남성과 다르게 경험하는 건강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장애라는 특성이 부가되어 남성장애인이 경험하지 않은 추가적인 어려움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 법률 제6조에서 제시하고 있는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의 내용에서도 성별특성에 따른 건강보건관리, 모성보호 등 여성장애인의 건강보건관리에 대한 사항만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에 대한 전달체계로써의 기능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19조, 제20조에 중앙 및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의 업무에서도 여성장애인의 임신과 출산 시 장애 유형에 맞는 전문의료서비스 제공에만 치중하고 있다.
물론 남성과 달리 여성건강의 핵심은 생식건강일 수 있고, 여성의 출산기능은 여성 건강의 핵심으로 볼 수도 있다. 여성으로써 임신과 출산과정 동안의 건강관리는 여성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는 장애여성은 이 법에서 배제되는 것인가? 이 법의 핵심은 장애인의 건강을 인권의 중요한 핵심요소로 보고, 이를 위해서는 성평등과 장애평등, 성 주류화와 장애주류화 또는 장애포괄 등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 말하면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보장에 관한 법률>은 기존의 장애여성의 건강을 임신과 출산 과정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모성보호 측면만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단순히 보건의료적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성건강의 개념을 단순한 모성보호에서 벗어나 1995년 9월 북경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대회의 여성과 건강분과에서 논의되었던 광의의 여성건강 개념으로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다. 광의의 여성건강 개념이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고, 여성의 다중역할과 정신건강까지 포함하며, 건강수준, 건강관련 조건, 의료이용 등 남성과 구별되는 생리적인 조건과 환경을 고려한 신체적 안녕과 정신적, 사회적 안녕상태로 포괄적인 의미의 건강개념이다. 또한 본 법률에서는 장애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시된 정책으로 여성장애인의 임신과 출산과 관련한 산부인과적인 전문의료서비스 제공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장애여성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권에 해당하는 각종 영역에서의 통계 및 데이터베이스에 젠더의 성격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15세부터 49세까지로 정의되는 가임기여성 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중장년기, 특히 폐경전후/폐경기 여성, 고령 장애여성 등 전 생애주기의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이 법에서는 의료진에 의한 장애인의 건강관리가 중요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건강이란 장기적으로 자기 책임 하에 스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은 타인에 의한 관리차원이 아닌 평생 동안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자기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