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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장연 웹진

61호

61호
(포커스1)여성대상범죄의 대책은 우리사회의 차별을 줄이는 것이다.

<Focus 1>

여성대상범죄의 대책은 우리사회의 차별을 줄이는 것이다.
 - 잇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장)

  여성대상범죄는 결코 적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한해동안 발생한, 친밀한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만 최소 91명, 살인미수는 최소 95명에 달한다.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의 절대적 다수는 남성인 성폭력은 ‘성별화된 폭력’이다. 범죄로 신고된 강간·강제추행만 1년에 2만 건이 넘지만 (2014년 경찰통계), 신고율은 10%에 그친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이야기다.

  젠더, 젠더표현,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 공공장소에서의 괴롭힘과 폭력을 개념화·문제시하는 길거리괴롭힘 반대행동도 여성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할러백(ihollaback.org)이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넌진상 캠페인(jinsangroad.org)에 제보된 사례들을 보면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가해가 매우 빈번하고 일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들은 시선이나 언어적 괴롭힘 등 제도가 개입하기 어렵거나 방기하고 있는 폭력에 상시 노출되어 있고, 직간접적 폭력 경험의 축적으로 어느 시공간에서나 자신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여성혐오사회는 여성대상범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기까지 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매우 불합리한 고통에 처해있다.

  지난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한국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남성이 ‘여자’(그것이 자신의 짐작이든 아니든)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기다리다가 비면식의 여성을 무참히 살해했다. 젊은 여성에게, 서울의 가장 번화가인 강남에서, 근처에 ‘남자친구’가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후에 만연한 여성혐오,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문화가 여성살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외침이 연일 강남역과 전국 곳곳에서 계속되었다. 여성이 너무나 자주 맞고 살해되는 사회에서, 모든 여성은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라는 비통함과 분노, 한국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절실함과 열망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제동장치 없이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고 CCTV 화면을 내보내는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고, 정부부처는 입장표명조차 없었으며, 경찰은 ‘대한민국에는 아직 혐오범죄가 없다’고 단언하기에 급급했다. 추모행동 참여자들, 특히 여성들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법적대응을 해야만 할 만큼 모욕과 협박에 시달렸다.

  정부대책의 문제점은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정부대책 즉각중단과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정당 기자회견이 이어졌고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장애인연합 등 6개 단체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CCTV 확충, 여성대상범죄 최고형 구형, 심리치유 앱 도입, 보호수용제 도입 등 당초부터 진행하고 있었거나 보여주기식 대책만 짜깁기 되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 받는 사회에서 ‘보호’는 아무 실효성이 없다는 여성들의 외침은 반영되지 않았다. 교육이나 캠페인조차 없이 생뚱맞은 화장실 타령을 했고, 정신장애인 격리가 주요대책으로 제시되었다.

  여성과 남성이 화장실을 같이 쓰기 때문에 여성대상범죄가 일어나는가? 핵심은 ‘우범지역’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공간을 잠식한 여성혐오다. 더 위험한 시공간이 있다는 가정은 ‘거의 틀렸다’. 밤거리도 한낮의 집도, 혼자 사는 것도 같이 사는 것도 위험하다. 공공장소에서의 폭력과 사적공간에서의 폭력은 같은 원인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것은 개개인 간의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 ‘여성혐오’에 기인한 문제다. 문제의 핵심이 불평등한 문화와 인식과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근본주의’와 ‘성차별’에 기인한 대책은 정당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상식적으로 따져 봐도 옳은 대책이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더욱 표적화 된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제주도 지역 여자화장실에서는 한 남성이 여성을 목 조르고 공격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더구나 화장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폭력은 여성대상범죄가 아니라는 것인가? 화장실 성별분리로 여성대상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발상 속에는 보호할 만한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를 가를 수 있고, ‘여성’으로 인정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나눌 수 있다는 이분법이 작동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대상범죄의 ‘여성’ 범주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무지함이며 차별행위다.
 
  동시에 정신장애인을 낙인찍는 정부정책이 줄줄이 실행되기 시작했다. 경찰의 ‘여성안전 특별치안대책’이 경찰 자의로 정신장애인을 ‘행정입원’ 조치할 수 있도록 하고 퇴원 기준을 높이는 등 관리/감독하겠다고 발표한 데 뒤이어 6월 1일 정부는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없는 범죄 종합대책’을 통해 학교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조기발견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는 남성 정신장애인이 공공장소로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되면 위험이 사라진다고 여기거나, 그런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여성대상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동력 삼아 정신장애인을 관리·격리하기에 나선 것은, 여성도 장애인도 치안강화의 도구로 손쉽게 이용한 것이다.

  지자체에서 시행되는 대책에도 실효성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의 여성안심지킴이 사업은 여성들이 24시 편의점의 위치를 파악하고 위급상황에서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지만 그 자리에 있다고 안내된 편의점이 온데간데 없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경기도는 지난 7월부터 올해 말까지 ‘기초수급자 싱글여성’, ‘여성세대 한부모가정’에 홈방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목표로 한 5천200가구의 절반 정도를 지원하는 데 그쳤다. 원인은 집주인의 반대, 주민센터에 방문해서 신청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노동조건, 그리고 여성 1인가구임을 드러내는 것조차 ‘두려운’ 사회분위기 등으로 보인다. 결국 주거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하면서 주거환경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근본 원인을 건드리지 않는 정책, 통과기준을 충족하는 일부에 대한 선별적인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작년 8월,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가 대전광역시 성평등기본조례에 대해 항의하자 여성가족부는 ‘성소수자’를 모두 삭제하도록 지시하여 성평등정책의 의미와 수준을 떨어뜨렸다. 그보다 앞서 교육부는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학교성교육표준안’을 발표해 질타를 받았지만 일부만 수정하여 시행 중이다. 소수자혐오가 제재는커녕 부추김 되고 정부부처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현실은 사회적소수자를 향하는 ‘증오범죄’, 여성대상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여성대상범죄대책은 우리사회의 차별을 줄이는 정책이어야만 한다. 포괄적 성교육을 받을 권리, 내가 어떤 정체성이나 경험을 갖고 있든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여성대상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 포괄적 성교육이 이뤄지는 사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낼 수 있는 사회를 앞당기기 위한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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