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슈>
대선을 향한 장애계의 연대, 그 연대 속의 여성장애인
- 이용석(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유례가 없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수백만의 국민들 요구와 법절차를 통해 탄핵을 당하고, 대통령 탄핵 후 불과 열흘 만에 세월호가 그 참혹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이제 전직 대통령이 된 한 중년여성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보이며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섰고, 그 살풍경이 조간신문 첫 장을 장식했다. 이제 비로소 5월 9일로 정해진 대선을 향하는 정치권의 발걸음이 숨 가쁜 만큼 장애계의 일정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 장애계는 이번 조기 대선을 맞아 장총련, 장총을 중심으로 전국 1,187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하는 2017 대선장애인연대를 꾸렸다. 대선장애인연대는 지난 2월 13일 참여단체 전체회의를 갖고 공약개발위원회, 공약평가위원회, 참정권보장위원회 등 공약개발 및 대선 활동을 위한 채비를 갖췄으며, 현재 장애계의 숙원 정책을 장애유형별, 복지서비스별로 취합하고 검토하며, 새로 들어설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한 실천 의지를 가늠하면서 공약요구안을 개발하고 있다. 총 4개의 영역, 12분야, 15개의 공약으로 이루어질 이번 대선공약요구안은 장애유형별, 복지서비스분야별 각 단체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이를 장애포괄적 관점으로 영역을 나누고 분야별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이 과정은 각 참여단체별 숙원 정책을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해야만 하는 꽤나 지난하고 복잡하다. 하지만 단 한 분야, 여성장애인의 인권향상과 권익옹호를 위한 공약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견도 없었다. 이는 장애계 내에서도 여성장애인이 처한 매우 ‘특별한 차별적 위치’ 때문인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장애인이 겪는 차별은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차별’보다는 빈곤을 포함한 매우 다중적 차별이라 할 수 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여성장애인을 “다중적(multiple) 차별”의 대상으로 명시하였는데, 이는 장애, 여성, 빈곤 등이 모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차별임을 인정한 때문은 아닐까 싶다.
가령, 매우 가부장적이고 배타적인 우리 사회에서 여성장애인은 남성장애인에 비해 교육률이 현저히 낮다. 한 예로 여성장애인 중졸 이상 학력이 32.8%로, 남성장애인(63.0%)의 절반 수준(2008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불과하며, 전체인구 고졸 이상 비율이 72.7%인데 여성장애인은 22.5%로 여성 전체인구의 1/3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는 매우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결과는 여성, 혹은 장애인에 대한 배타성이 노골적인 우리 사회마저도 차별 속의 차별이라는, 즉 똑같은 환경 속에서 여성장애인이 남성장애인 또는 여성에 비해 교육을 받을 기회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수치이다. 이처럼 여성장애인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는 얼마든지 있으며, 이 상황은 여성장애인의 미래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하고 중첩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산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장애와 비장애, 부유함과 빈곤도 사회적 계급으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같은 일을 하면서 남성이 100만 원을 받을 때 왜 여성은 70만 원을 받고, 비정규직 10명 중 7명이 여자이며, 공적 노동시장에 나오는 장애인이 10%도 안 되는 현실은 여성, 장애인, 또는 여성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우리사회의 사회적 계급으로의 판단인 것이다.
장애인, 그중에서도 여성장애인은 노동시장 진입이 가장 어려운 대표적인 집단이다. 또한 노동시장에 진입한 후에도 주로 비숙련 직종과 한정된 분야에 종사하며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16년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장애인의 남성 경제활동참가율은 50.3%, 고용률은 47.1%인데 반해, 여성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2.4%, 고용률은 20.8%로 남성장애인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실업률에서도 남성장애인 6.4%, 여성장애인 6.8%로 여성장애인이 높게 나타났다. 이렇듯 노동시장에서의 소외는 여성장애인의 빈곤 상황으로 내몰고 급기야 모성권 보장의 열악함과 이어진다.
여성장애인은 임신을 하는 순간, 축하 대신에 출산과 양육에 대한 주변의 걱정에 시달려야 한다. 아이를 낳아도 모성권을 제대로 보장받기는커녕 접근성이 거의 없는 병원을 힘겹게 이용해야 한다. 여성장애인이 아이를 낳으면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출산비 100만원, 산전·후를 모두 포함해 한 달 최대 80시간인 활동보조 시간을 6개월 지원받는 게 고작이다. 게다가 지적장애나 정신장애가 있는 여성장애인의 경우는 신체장애 여성에 비해 매우 다른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양육 관련 정보 부족’은 지적장애가 15.3%로 다른 장애 유형(지체 1.4%, 뇌병변 0.0%, 시각 3.4%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2014년 장애인실태조사).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장애인에게는 실패와 성공을 충분히 경험하고 그 가운데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일련의 사회적 성장 과정이 생략되거나 군데군데 잘려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여성장애인들에게 이제까지 강요해왔던 다중적 차별이라는 장벽은 여전히 견고하다. 하지만 그 견고함은 그동안 여성장애인들의 가열찬 투쟁으로 시나브로 부서져 그 틈을 보이고 있다. 여성운동에서도, 장애운동 내에서도 주변화되고 소외되어 있는 여성장애인의 사회적 위치를 매 순간 아프게 확인할 때도 있을 테지만 어차피 깨트려 부술 장벽이고 넘어서야 할 태산이고 보면 과감히 깨트리고 쉬엄쉬엄 넘어설 수밖에 없다. 이번 2017년 대선장애인연대의 빅텐트 아래 모인 1,187단체 중 유일하게 여성장애인의 공약이 한 분야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계의 연대의식과 그 연대의 손길을 기꺼이 맞잡은 여장연의 소중한 선택이었다.
어쨌든 이번 대선의 판세는 이미 기운 듯하다. 두 당으로 갈라선 구여권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라는 부패한 권력을 그만 끝내고 싶은 거대한 국민적 열망에서 비롯된 정권교체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패한 더불어민주당의 후보인 문재인의 대세론과 이른바 사회통합과 적폐청산이라는 양날의 칼을 쥔 안희정, 이재명 등의 선전이 대선 전체의 분위기를 이미 장악했다. 이제 정권교체는 당연지사가 되었고 정권교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이루고 싶은 적폐청산과 변혁의 요구만이 봄바람처럼 분분하다.
하지만 기정사실화된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오히려 장애계로서는 난감하다. 지지율 높은 야권 후보들은 장애계의 요구보다 훨씬 더 리버럴한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를테면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를 완전 폐지하겠다든지, 장애인예산을 5배 인상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장애계가 도리어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이런 대선주자들의 복지공약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선거에서의 공약은 당연히 법이 되고 정책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상식적 판단의 근거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은 곧 끝나고 다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그 대통령이 누구든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곧 시작할 것이고 그 여정에 우리 장애계 또한 함께해야 한다. 함께하며 외치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우리의 요구는 우리 장애계 모두를 위한 연대의 결과이며 나아가 우리나라 250만 장애인 모두의 염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