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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장연 웹진

67호

67호
(여기, 지금, 우리 1) 장애유형별 시리즈-시각장애여성의 인권②

<여기, 지금, 우리 1>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여성장애인의 인권실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장애유형별 시리즈를 기획연재하고 있다.

장애유형별 시리즈-시각장애여성의 인권

전인옥(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상임대표)

1. 들어가는 말

필자가 지방에서 맹학교 초등부를 다니던 시절, 당시 여학생 중에는 전 학년 통틀어 필자의 나이가 가장 어렸었고, 이 현상은 6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달라질 수 있었다.
어느 해 가을, 강원도 인제에서 10대 후반 가량의 소녀가 시각장애인오빠와 함께 입학 상담을 위해 필자가 다니는 학교를 찾아온 적이 있다. 입학하고자 하는 오빠의 당시 나이는 22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부만 운영하고 있었던 당시 학교의 입장에서는 20대 초반 남성의 입학 허가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여학생이었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20대 초반의 나이가 남학생에게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22세 남성의 입학 상담이 처음은 아니었다. 필자가 초등부 입학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22세 남성이 초등부 1학년으로 입학을 하여 필자와 같은 학급에서 공부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학생은 도중에 학업을 중단했고, 그 후 몇 년 동안 20대의 시각장애남성이 그 학교를 찾은 적은 없었다.

그 때 필자와 같은 방을 쓰는 언니 한 분이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스무 살이 넘은 남학생이 바둑아 이리 와 나하고 놀자를 어떻게 공부하겠니? 그러고 보면 맹인(1960 - 70 년대에 시각장애인을 지칭하던 용어)남자보다는 맹인여성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낫다는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언니들이 초등부 1학년 교과서를 읽는 것보다 오빠들이 초등부 1학년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분명 낯선 느낌이었다.

필자가 고등부 졸업을 앞두고 진로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던 때 남자선배 한 분은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맹인남성보다 맹인여성의 숫자가 적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진로에 대해 막막한 쪽은 맹인남성이나 맹인여성이나 다 같을 것인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당시엔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도 남성우월주의에서 나온 발언이 아닐까 살짝 의심하는 정도였던 듯하다.

그런데 최근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이 나라는 아직까지 비장애인 위주의 제도와 남성중심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어 장애여성들은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으로서,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서 숱한 제약과 차별을 경험해야 하고, 시각장애여성은 정보소외계층으로서 장애여성계 내에서도 더욱 열악한 조건과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으므로 어쩌면 남자선배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 임신과 출산

임신과 출산은 결혼에 따르는 필수 과정처럼 여겨졌고 여성 고유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당사자는 물론 함께 하는 가족에게도 최대의 기쁨인 이 임신과 출산이 시각장애여성에게는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다가와 기쁨을 반감시키게 되는데, 그 부담의 원인은 유전의 가능성과 양육의 어려움으로 집약될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재생산권과 관련된 유전의 문제를 잠시 짚어 보고자 한다.

1) 장애인의 재생산권

유전의 가능성이 높은 장애유형으로는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근육장애, 간질장애 등을 꼽을 수 있다. 한 집안에 형제나 자매 혹은 남매 시각장애인이 있는 경우는 당사자들 대부분 이 2세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되며, 자연히 결혼에도 영향을 미친다.

10여 년 전 필자는 맹학교 동기생들과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중 2세 문제에 대해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유전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남성이 비장애여성을 배우자로 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유전의 확률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의견, 유전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시각장애인은 2세를 가지면 안된다는 의견, 그러나 결혼을 한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들이 오고갔지만 필자는 그 어떤 의견에도 동조할 수가 없었으니, 이유는 이러하다.

2004년경 필자가 즐겨 시청하는 TV 프로에서 지적장애 3급 남성과 지적장애 2급 여성 부부의 신혼생활을 5부작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그 방송을 시청하면서 필자는 근 30여 년간 갖고 있었던 장애인의 재생산권(?)에 대해 혼란을 갖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주인공남자의 자녀 갖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시청자인 필자에게 강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똑똑해지면 아이를 갖겠다는 부인의 말을 들은 남자는 부인에게 구구단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참다못한 부인은 연필을 내던지는 장면이 바로 혼란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 30여 년간 필자가 갖고 있었다는 장애인의 재생산권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자면, 미혼일 때는 유전 때문에 2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장애인동료들이 막상 결혼하면 거의 대부분 자녀를 갖는 것을 보면서 많이 비난하고 많이 분개했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울 정도의 불편과 장애인으로서의 고뇌를 대물림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비난과 분노의 이유였다. 그러던 것이, 앞서 언급한 TV 프로를 보면서 유전의 가능성이 있는 이들도 자신의 핏줄을 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이 있음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2세의 인권도 고려하지 않은 채 고통까지 책임져 줄 수 없는 부모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삶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식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2) 시각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해당조항 내용 중에는 장애인이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자녀수와 나이 터울을 선택할 권리가 수록되어 있는데, 시각장애여성 중에는 이런 권리조차 누리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어느 전맹여성의 경우, 둘째아이를 임신했을 때 시어머니가 심히 못마땅해한 예가 있었는가 하면, 산부인과의사조차도 고객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 어떻게 키우려고 아이를 낳으려 하는가“”라며 나무랐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또한 마마보이남편을 만난 어느 저시력여성은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가뜩이나 며느리를 학대하는 시어머니에게서 더욱 심한 학대에 시달리게 되었고, 아이 출산시에 남편이 산모를 돕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였으며, 이러한 스트레스들로 인해 그 여성의 시력은 급격히 저하되어 그나마 저시력인으로 살아가기 어렵게 까지 된 예가있다.

필자의 후배 중 한 사람은 아이를 출산한 후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하였는데, 그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땅에서 시각장애여성이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기쁨이기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3. 나가는 말

위에서 언급한 시각장애여성의 임신 및 출산 그리고 그와 관련된 유전의 문제를 어찌 풀어갈 것인지는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어쩌면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23가정과 가족에 대한 존중’ (b)항이 해답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어 끝으로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당사자들의 책임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은 필수이므로.

장애인이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자녀수와 나이 터울을 선택할 권리와 연령에 적합한 정보와 출산 및 가족계획 교육에 대한 접근권이 인정되며, 이러한 권리들을 장애인이 행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가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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