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야기 1> 헬렌켈러신드롬을 생각한다. 장애는 꼭 극복해야 하나?
김대호 작가(전남여성장애인연대 운영이사)
인도영화 ‘블랙’을 보고 진한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8살 소녀 ‘미셸’이라는 여자 아이와 생을 바쳐 그 아이의 홀로서기를 도운 ‘사하이’ 선생의 일대기다. 미국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선생님’의 스토리를 카피한 영화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국내에서도 지적장애인 육상선수 배형진씨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외에도 발달장애 수영선수 김진호씨 등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어깨를 나란히 한’ 성공신화(?)가 미디어를 통해 홍수처럼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그런데 네티즌 평점 10점 홍수 속에 7점의 박한 점수와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까지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한국사회에서 ‘장애를 극복하는 문제’는 정부의 일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막대한 경제적 지출과 개인의 삶을 포기한 부모의 노력도 뒤따른다.
그런데 왜인지 성공다큐들을 보는 내 눈에는 쓸쓸한 아버지들의 뒷모습과 어머니의 멍한 공허가 얼핏얼핏 스쳤다. 나 또한 발달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조카 둘을 둔 터라 그 부모의 삶이 어떠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헬렌 켈러는 1880년 6월 27일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의 아이비 그린이라는 농장저택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부동맹의 전 관료고, 어머니는 남부동맹 장군의 딸이자 총사령관의 사촌이다. 정부가 해주지 않는 일을 스스로할 수 있는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충북 옥천군 아자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마음콘서트’를 5년 째 진행하고 있다. 부부와 사람들과의 갈등, 우울증, 진로, 자녀교육 등이 주요 질문이지만 매달 빠지지 않는 것이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장애아동과 가족’의 문제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속마음 이야기로 늘 눈물바다를 이룬다.
여기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이도 힘들고 가족들도 힘든데 세상이 부추기는 데로 ‘장애를 꼭 극복해야 하는가?’하는 화두였다.
‘비장애인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것은 장애는 비정상적인 것이며 비장애인과 똑같아져야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프레임을 담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논리이다. 특수한 사례를 일반화시켜 표준인 것처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논리에는 장애아동들과 가족들의 행복한 삶은 안중에도 없다.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 놓고 그 범주에 들어와야 정상인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정부가 얼마나 장애에 대해 무지한가를 반증한다.
‘장애의 극복’에 대해서 다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그릇의 모양새가 다릅니다. 단 한 사람도 같은 그릇은 없어요. 아이는 이미 아이의 그릇에 맞게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릇이 100점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만 인정하면 모두가 행복하잖아요. 다만 아이에게 꼭 보여줄 것은 엄마와 아빠가 먼저 행복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의 모든 아이는 장애가 있건 없건 100점이고 축복입니다.”
그런데 뒤 따라오는 한 마디가 아프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제가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겠죠?”
더 이상 장애를 극복하라고 협박하지 말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스스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