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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인의 정치세력화, 우연을 가장한 필연
조성민 더인디고 발행인
4.15 총선 잔치가 끝났다. 몇 가지 기록도 남겼다.
66.2%는 28년 만의 총선 최고 투표율이다. 50.3%는 초선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 비율이다. 이는 17대 국회 이후 16년만이다. 19%는 역대 최다인 57명의 여성 의원 비율이다. 1%도 있다. 4년 만에 장애인 비례대표가 국회에 진출한 비율이다. 이 중 여성장애인은 미래한국당 김예지 당선자와 더불어시민당 최혜영 당선자 2명이다. 장애인 비례대표가 시작된 15대 국회 이후 두 번째 맞는 기회다. 전성기로 일컫던 18대 국회(2008~2012) 때도 2명의 여성장애인이 비례대표로 입성했다.
그래서 일까 장애계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21대 총선 이후 장애인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미와 평가 등을 위한 첫 토론회가 열렸다. 코로나19로 무관중 라이브 생중계로 진행됐다. 각 당의 장애인 비례대표 공천 과정과 안정권 의석 배치, 장애인위원회 등 논의가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 국회에서는 단 한 명의 장애인 비례대표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토론에서 나온 ‘장애인 정치세력화’란 ▲조직화 등을 통한 의회진입과 ▲국회나 지자체 등 정치기구 내외에서의 영향력과 유권자 세력화, 그리고 ▲장애운동의 대중화에 이르는 꽤 기나긴 총체적 과정이었다. 정치세력화를 제도권 진입에 중점을 둔다면 납득할 만한 정의이다. 하지만 의제 설정과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책 중심에 의미를 둔다면, 장애인 비례대표는 소수 개인의 정치세력화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과 여성운동의 역사에서처럼 ‘제도권’을 무시한 정치세력화는 생각할 수 없다. 실제 이번 선거는 물론이거니와 장애인 비례대표 진출 역사 이래 장애계는 직간접적으로 제도권 진입을 시도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관념적 정의를 떠나 이번 21대 의회 진입은 꽤나 반가운 소식이자 다시 장애인 정치세력화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기대가 크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우려의 그늘도 깊다. 기존 장애인 비례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개인 정치 중심이었다는 것과 그들이 지금 현장에서 별다른 영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거를 찾기도 한다. 우선 이번 장애인 비례대표들의 의회진입 또한 양적 성과는 있었지만 사전에 충분히 조직화된 영향력보다는 선거 동원 효과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실제 선거 과정에서 어느 후보도 당이 정한 공약 이외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철학이나 현장에 기반을 둔 차별성 있는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여성장애인 후보조차도 장애인의 47%를 차지하는 여성장애인의 삶을 제대로 대변하거나 이를 공약으로 구체화한 후보자는 없었다는 평이다. 즉 이번 비례대표 당선자들 또한 의회진입 과정에서부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과연 지난 25년 동안 하지 못했던 국회 정치기구 내외에서의 영향력과 유권자 세력화 그리고 장애 운동의 대중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장애계, 특히 여성장애인들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사전 준비나 진행과정에서 어떠한 전략이나 노력은 있었던가? 정치세력화는 소수 장애인 비례대표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계 내부의 영향력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마치 노동과 여성이 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의회에 진출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정책적 영향력과 세력화를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정치세력화는 장애인의 의회 진출과 한편에서는 정책적 역량강화 등 양 날개로 날아야 더 크게 날아오를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여야 정당의 선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장애계의 영향력을 고려하기보다는 장애인 개인, 특히 여성장애인 인재영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최혜영 의원과 김예지 의원이 대표적이다. 우여 곡절은 있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정의당과 달리 안정적 의석을 배정받아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비례대표제의 변화에 따라 전략공천 무산과 위성정당 등으로 인한 유례없는 소동도 한몫했다. 냉정하게 보면 의회진입 과정은 영입인사 개인이나 장애계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거를 맞이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20년 5월 30일, 21대 국회 개원이 시작된다.
장애인 비례대표 당선자는 이제 국회의원 신분으로 4년의 시간을 갖는다. 장애계는 20대 국회 때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여야 장애인 정치권력과 도모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제마다 협력하기보다는 간혹 의원 개인 혹은 개별단체마다 입장을 내세울 수 있다.
문제는 개인화, 개별화가 익숙해지다 보면 앞으로 4년 뒤에도 지난 25년의 역사에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의회 내에서는 ‘장애인, 비장애인’은 물론이고 성별 또한 기울어진 ‘권력의 유리절벽’을 만나게 될 수 있다. 막상 의기투합을 하더라도 권력의 비대칭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여성운동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과 비례를 포함한 의회 내 여성 비율을 높이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 결과 2000년 16대 국회에서 여성 할당제를 도입하면서 두 자릿수로 늘어났다. 비록 각 당의 공약(30%)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여성의원 비율(28.8%)에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이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19%의 성과를 달성했다.
그럼에도 여성계는 여성할당제를 권고조항이 아닌 의무조항으로 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의회진출과 함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여성정당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 달 만에 창당한 ‘여성의당’이 10년 이상 활동한 녹색당보다 높은 득표율(0.7%)을 얻은 것이나, 20대 여성이 지역구에서 페미니즘을 내걸고 선거를 치른 것 등에서 고무되고 있다. 정당가입을 통한 당내 정치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청년 유권자들의 표심이 사표가 되더라도 정당보다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이번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여성장애인은 ‘여성’과 ‘장애인’ 중에서도 소외되는 등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렵지만 그 경계선상에서 여성장애인 정치세력화의 양 날개의 전략을 구사해볼 만한 기회가 또 얼마나 있을까. 12년 만의 일이다. 거대 여야에 여성장애인이 포진한 것은 마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