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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장연 웹진

79호

79호
<우리가 사는 이야기 2>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임수정

대구여성장애인연대 활동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장애인활동가 동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는 즉각적으로 반발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대구여성장애인연대가 만들어진지도 벌써 22년째이고, 그 사이에 법적 제도적으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어왔는데요. 도대체 뭐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그 동료들의 대답은 사람들의 시선이요였습니다. 주기적으로 받고 있는 장애인식개선교육의 바로 그 인식과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답을 듣자마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의 활동가로서 나름 장애감수성이 있다고 자부해왔던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장애인활동가 동료의 마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장애 관련 이슈를 챙겨보거나 장애학 관련 도서를 읽는다고 해서 장애감수성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가 활동을 시작한 지는 22년째이고, 저는 그 마지막 2년째에 합류 중입니다. 비장애활동가로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많이 감사했고, 여타 사회조직들과 달리 기본적으로 배려와 존중이 자연스럽게 녹아져있는 조직문화가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미약하나마 우리의 이 삶터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주어진 일상적 업무를 넘어 새로운 활동을 구상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에 응모하기도 했습니다. 진행된 것도 있고 탈락한 일도 있었지만, 계속 도전하고 시도하다 보면 무언가 조금은 보탬이 될 수 있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사업비를 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들을 작성하다 보면, 현재 조직체계 혹은 문화에 대한 진단을 요구받을 때도 있고, 단체의 장점과 부족한 점을 써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일단 사업비를 받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눈이 멀어, 맞는 말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냉혹한 비판과 처절한 성찰을 자판으로 두들겨댔습니다. 그러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동안 단순히 조직진단이란 한 단어로 퉁칠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맥락들,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시도해 본 연혁들, 수많은 사건사고들, 끝없는 한숨과 좌절과 눈물들, 성취와 기쁨의 웃음들, 이 모두를 거세시키고,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라는 뜨악한 자각이 오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장애인활동가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뜨악함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뜨악함을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제대로 된 활동가가 될까, 반복한다고 달라지기는 할까,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이런 완고함이 진짜 장애가 아닐까’. 여러 상념이 번뇌를 일으킵니다.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불안이 엄습할 때, 누군가의 선의와 호의 말고 기대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짓누를 때, 그래서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내게도 있는지 의문이 찾아들 때’, 그때 정말 장애가 발생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내벽에는 다양한 글귀들이 이미지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네가 정말 아름답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 말을 우리의 삶터인 우리의 조직에도 그대로 해주고 싶습니다. ‘너의 탄생을 축복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줘서 고맙고, 지금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네가 달라지라고 말하지 않을게. 이젠 내가 달라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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