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개인예산제의 문제점과 자기결정권 강화방안
개인예산으로의 전환,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차장 권 재 현
현재까지 다뤄진 선행 연구나 소개 사례를 보면 모두가 개인예산제의 취지, 개념,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장애인 이용자가 민간시장에서 서비스를 구매하여‘소비자’의 지위를 차지한다거나, 개인예산제의 근본이념으로‘개인의 욕구’에 맞추어 유연화하는 지원서비스의 바람직성을 강조하는 개별유연화(personalisation)를 언급하고, 핵심 지원 방법으로 이용자가 지원서비스의 이용 방식을‘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자기주도지원(self- directed support)을 설명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러 문헌을 통해 국내에서 2010년대부터 국외의 개인예산제를 파악하고 국내의 도입 가능성과 타당성, 제도 설계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유사한 시기와 기간 동안, 권리보장법 제정 운동을 통해 개인별지원계획에 따라 장애인 당사자가 소비자로서 직접 복지서비스를 구매하고 계약하는 주체가 되는 변화상을 제시하고, 2022 대선장애인연대를 통해‘개인예산제 도입’을 대선 후보들에게 공약으로 제안(2021.11)해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이어진 현재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희망과 우려가 공존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정부의 모의적용을 위한 4개 지자체(서울 마포구, 충남 예산군, 세종특별자치시, 경기 김포시) 선정과 대상자 모집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올바른 지향점과 전제 조건에 대한 학문적, 이론적 논의보다는 정책 입안과 적용 과정과 관련해 현 정부안에서 그려야 하는 지향점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모의적용사업의 목표설정이 명확해야 한다. 그간의 각종 정책 도입 혹은 도입 논의를 위한 모의적용 또는 시범사업이 그러했듯 해당 시범사업의 목표설정과 성과평가 기준은 매우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환경과 인프라의 제한을 전제로 한계를 설명하기 위한 정량 중심의 소극적 목표 설정이 아닌, 무엇을 살펴 어떤 함의를 도출할 것이냐 하는 정성 중심의 의도적 목표 설정이 중요한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희망과 절망 그 어딘가에 위치한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의 애절한 선례를 보면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의적용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한 보건사회연구원 이한나 연구원이 밝힌 기초모델(안)과 관련해 설명한 쟁점과 한계 설정 이유들을 이해함과 동시에,‘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후의 파급력을 고려하면 초기에 개인예산제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여러 실험적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의도’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이 기준으로 사업의 절차별로 몇가지 제언해보자면, 서비스 참여자 선정을 다양성을 고려해 연구진이 진행함은 바람직해 보이며 연령, 유형, 정도, 활동지원수급량(미수급 포함)에 대한 최대의 경우 수를 가져가기를 바란다. 특히 기존 활동지원수급량과 접근성의 차이가 있는 장애유형별 상황을 고루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개인별지원계획 수립의 경우에는 국민연금공단만의 시행을 기획했다면, 구성협의체에 해당지역 장애인복지관 등 염두에 두었던 민간을 참여하게 함으로써 모형 변주나 확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고, 수립 내용에 대한 신청 당사자의 의사 확인(혹은 조정)의 절차를 의도적으로 두어 만족도, 절차 필요성 등을 확인해 보아야 한다. 지원영역의 경우, 6개 영역 안에 세부 서비스별 쏠림 현상 유무 파악 및 방지를 위해 지원 상한 설정과 서비스에 대한 환산 기준에 대한 적절성을 진행 과정에서 면밀히 살피고, 사용방식(기간) 유연성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밖에 각 모델별 활동지원 외 서비스 이용 및 제공인력 간 발생문제 확인 및 개입 등의 절차도 보완하고, 모니터링 및 후속 조치, 정산 과정의 절차, 주체의 문제점은 없는지 파악해야함도 물론 중요하겠다.
다음으로 정부의 의지다. 현 정부는 대선 기간 후보시절 공약부터 인수위원회 시절 발표한 국정과제에 이르기까지 기존 정부정책의 강화, 정교화, 확충만을 강조하고 방법의 구체성이 빠진 분야별 현안 과제의 나열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인예산제도의 첫발을 내딛는 현 시점에 정부가 그리는 장애인 삶의 방향과 그를 담아낼 변화상(狀)을 명확히 제시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프라의 부족과 수급 불균형 문제 이슈를 뛰어 넘어 자립과 자기결정의 삶이 담겨야 함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활동지원급여의 일부를 자율사용급여로 전환하여 사용하는 지금의 모델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용이한 선택이었지만, 활동지원에서의 결핍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개인예산제의 궁극의 취지를 살리려면 활동지원 뿐만이 아닌 사회서비스 예산을 이용자 욕구평가에 기반하여 총량으로 할당해야 한다. 즉 (이용자 주도성을 담보하는) 욕구평가 단계에서부터 활동지원 뿐만이 아닌 사회서비스 욕구를 포괄적으로 사정하고, 여기에 대응하는 충분한 예산을 권리로 지급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예산에서 보장하는 욕구의 범주가 욕구사정의 내용과 방법에서의 변화도 이끌어 내야 자기결정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해보자. 모의적용을 통해 시범사업의 목적과 목표를 도출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현 정부가 제시할 2026년 본 사업의 구체적 방향성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제도개편은 물론, 인프라와 수급 충족을 위한 예산 투입 범위 설정과 반영이 뒤따라야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준비해 실행할 것인가. 현 시점, 현 정부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총량이 아니라 명확하고 올바른 의지표명과 방향성 제시일 것이다. 3~4년 안에 정책을 완성할 생각은 그 누구도 안하고 있지 않을까. 끝으로, 기존까지의 개인예산제 논의와 실천 단위에서는 참여 연구자나 현장 전문가 등의 역할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그 공도 크다. 다만 이제는 정부 차원의 정책수립과 시행의 시작 시점이기에 보다 폭넓은 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 단체 등 논의 구조 확보, 강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모의적용 시 모니터링단의 역할이 중요할 텐데 이번 모의적용 뿐만 아니라 내년 시범사업 계획 수립을 위한 준비, 실행 과정에도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수렴을 위한 절차를 보장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의 모든 장애인 정책이 법적 근거 마련, 제도와 서비스전달체계 정비, 서비스 제공에 있어 공공과 민간의 역할 조화 등에 이르기까지 장애인 개인의 선택과 자기결정권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일관되게 변화, 발전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