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연주 정책팀장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서비스지원 종합조사 도구를 활용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밀실에 쌓여있던 그 종합조사 도구가 지난 9월 3일 공개되었지만, 한시련을 비롯한 참가자들로부터 장애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이후 종합조사도구 마련을 위해 총 7차례에 걸쳐 관련 연구가 수행되었고, 2017년 10월부터는 종합조사도구 등 장애등급제 폐지 세부 추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민·관협의체가 구성·운영되었지만 감각장애인·정신장애인·여성장애인 등의 장애특성과 욕구를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애당사자들의 비판에 대하여 보건복지부는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그러나 2개월여가 지난 11월 15일 오제세 국회의원과 공동대응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간담회에서 수정안을 내놓지 못하였다.
이번 조사 도구는 장애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기보다는 과거처럼 장애로 인한 기능제한, 즉 의학적 기준 위주로 평가 영역과 지표로 구성하였다. 총 배점 596점 중 기능 제한이 532점(일삼생활 동작 344점, 수단적 일상생활 동작 116점, 인지행동 특성 72점)을 차지하고 있다. 음식물 넘기기, 누운 상태에서 자세 바꾸기, 옮겨 앉기, 앉은 자세 유지, 배변, 배뇨 등의 일상생활 동작 평가지표는 시각장애와는 무관하고, 수단적 일상생활 동작의 평가지표는 일상생활 동작에 비해 시각장애인의 특성 및 욕구와 관련성이 있지만 배점이 너무 낮다. 또 환경 영역의 평가지표는 가구 특성만 반영하였을 뿐, 시각장애인의 보행 및 정보접근 환경 등 자립생활에 필요한 사회 환경을 반영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지표간 배점의 차이가 크고, 상이한 가중치의 근거 역시 불충분하다.
이 조사 도구를 활용하여 모의 적용을 한 결과 시각장애인의 급여량은 평균 7.63% 감소 하는 것으로 드러나 조사 도구에 대한 타당성에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도구 개발 연구 과정에 전문가들을 폭넓게 참여시키기보다는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 등 신체기능 손상 분야의 전문가들로만 참여시켰으며, 장애당사자들의 참여는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각종 서비스 지원에 있어서 중요한 잣대였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다. 30여년만에 변하는 제도가 시행을 위한 시행이 되어서도 안되고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막는 식의 제도 시행이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더 촘촘하고 장애특성과 욕구가 반영된 조사도구가 나오기를 바라며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ICF 에 맞게 장애와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 관련 평가지표가 확대되어야 하고, 배점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둘째, 단일 도구로 모든 유형의 장애인 서비스 지원을 평가하는 대신, 발달장애인,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정신장애인 등은 장애유형별 조사도구가 개발되어야 한다.
셋째, 출산과 양육 등을 대부분 도맡아 하고 있는 여성장애인의 욕구를 추가하여야 한다.
넷째, 독거 중증장애인 또는 가족 구성원 전체가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 추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소통을 내세우고 있지만, 장애계와는 소통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한시련은 지난 8월 초에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안)을 복지부에 전달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수정하겠다는 말만 할 뿐 논의의 장을 만들지 않고 있다. 한번 수립된 정책은 쉽사리 바꾸기 어렵고 잘못된 정책의 수립으로 인한 피해는 당사자들의 몫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아왔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장애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 장애당사자들의 희망이 되는 조사도구가 되도록 진지한 논의를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