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이용석
1. 장애등급제 폐지의 근거
‘장애’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이어서 의료적인 관점만으로 그 경중을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장애의 개념과 장애의 정도를 측정하는 방식, 장애발생률 등의 장애통계를 구축하는 방식도 국가별로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장애등급제를 통해 장애정도를 구분해왔는데, 장애등급은 곧 ‘능력 있는 자’와 ‘무능력자’로 구분해 사회복지서비스의 급여량뿐만 아니라 민간영역의 서비스 지원을 결정하고 차등하는 손쉬운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장애인의 복지서비스 욕구를 등급별로 구분함으로써 장애관련예산을 절감하는 수단으로 작동되어 왔다.
지난 9월 3일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장애등급으로 선별해 왔던 사회복지서비스의 기준을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새롭게 측정할 수 있는 ‘장애인서비스종합조사도구(이하, 종합조사도구)’를 마련해 발표하였다. 돌봄, 이동, 소득‧고용 지원 서비스를 종합조사도구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해 지원하고, 특히 활동지원, 보조기기, 거주시설, 응급안전 서비스 등은 장애등급에 따른 제한 없이 모든 장애인에게 신청 가능하게 하겠다고 했다. 단, 종합조사도구의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표’를 통해 급여량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애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체 그 이유는 뭘까?
2. ICF가 반영된 장애인서비스종합조사도구, 사실일까?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승인한 기능․장애․건강에 관한 국제 분류인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는 건강 및 건강 관련 상태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개인과 환경에 존재하는 ‘건강의 구성요소’에 주목하는 통합적 관점을 제공하였다. ICF 스스로 밝힌 목적으로는 첫째, 건강과 건강관련 상태, 결과, 그리고 결정요소를 이해하고 조사하는 과학적 기초를 제공하고 둘째, 건강과 건강관련 상태를 설명하는 공용어를 제공한다. 셋째, 국가별 자료, 건강관리 원칙, 서비스에 대한 비교를 가능케 하고, 넷째, 보건정보체계 구축을 위한 체계적으로 코드화된 분류기준을 제공함으로써 건강정보 시스템 구축 기여 등이다. 이러한 ICF를 근거해 설계했다는 보건복지부의 종합조사도구는 ICF의 원칙과 방향을 반영해 충실히 설계되었을까?
ICF는 1부 기능수행과 장애, 2부 배경요인으로 나누고 1부의 구성요소에 ‘신체 기능 및 구조’와 ‘활동과 참여’, 2부에는 ‘환경요인’과 ‘개인요인’으로 구분해 ‘신체기능’과 ‘활동과 참여’, ‘환경요인’과 ‘개인요인’을 동등한 구성요소로 구성했다. 반면 종합조사도구의 급여량을 측정하는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에는 신체적 기능제한(X1)에 많은 배점이 몰려있다. 반면, 사회활동(X2)은 오직 직장생활과 학교생활로만 구성함으로써 장애인의 사회활동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 이는 종합조사도구가 ICF를 기반으로 개인의 욕구와 사회 환경 등을 포괄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장애로 인한 신체적 기능 제한을 위주로 평가 영역과 문항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점수로 환산하면 총 596점 중 기능제한이 무려 532점을 차지(일상생활동작 344점, 수단적 일상생활 동작 116점, 인지행동 특성 72점)하고, 사회활동이나 가구환경은 64점에 불과하다. 이러한 기울어진 배점은 신체기능과 활동과 참여, 환경요인과 개인요인 등을 동등한 구성한 ICF와는 배치된다. 이러한 배점의 불균형은 결국 시각장애인의 급여량이 평균 9.12 시간(7.63%) 감소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3.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의 문제점
내년 7월, 정치적으로 또는 법률적으로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더라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장애등급제는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장애등급’이라는 용어는 ‘장애정도’로 순화된 채 장애인복지법 제32조에 되살아나 있으며, 보건복지부는 하위법령을 통해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기존 1-3급)’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4-6급)’으로 구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기존의 장애등급 자료를 폐기하지 않은 채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하고, 그 틀 안에서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표’를 통해 급여량만 조정하겠다는 의도인 듯하다.
2017년 4월부터 10월까지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3차 시범사업’을 통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는 1,886명을 대상으로 이번에 발표한 종합조사표를 모의 적용한 결과, 활동지원 급여량은 전체적으로 월평균 5.13시간(약 4.58%) 증가했다. 문제는 대상자 중 45.76%에 해당하는 860여 명은 급여가 감소했고, 전체의 13.52%(246명)는 급여대상에서 탈락했으며, 최대 하루 급여량인 16.84시간을 받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특히, 최대 급여량의 경우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표’는 신체장애와 정신적 장애(정신장애, 발달장애), 감각장애까지 혼재되어 있어, 일일 최대 급여를 받으려면 신체적으로는 최중증 사지마비에 정신적 장애는 물론 시청각장애까지 있어야 하는 구조다. 또한, 기존 활동지원 인정조사표에서는 시각기능과 청각기능이 각각 최대 60점이 배점되어 있지만, 종합조사표에서는 '시청각복합평가'로 최대 20점에 불과해 시각장애인의 활동지원 급여량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종합조사표를 통해 제공하겠다는 4개의 서비스(활동지원서비스, 거주시설 입소, 보조기기, 응급안전 서비스)는 현재 등급제 체계에도 이미 있는 서비스이다. 게다가 거주시설 입소를 일상지원서비스로 제공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계획은 '탈시설'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이러한 보건복지부는 일상지원서비스 필요도 평가에서 ‘돌봄’이란 시혜적 용어로 규정해 장애인 당사자는 자립생활이 아닌 돌봄서비스 대상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4. 장애등급 폐지를 위한 제언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종합조사도구는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ICF를 근거했다면, ICF가 중요시했던 사회환경을 사회활동(X2)과 가구환경(X3) 단 두 가지로 뭉뚱그릴 것이 아니라 개인요인도 반영해야 한다. 즉, 사회활동의 경우, 직장생활과 학교생활로만 한정하지 않아야 하고, 가구환경은 아파트인지, 단독주택인지, 엘리베이터의 유무 등 보다 정밀한 항목이 필요하다. 또한 장애유형별 장애정도별 욕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에 맞는 맞춤형 종합조사표 항목 개발을 통해 각 유형별‧정도별 편차를 최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필요하다면 장애유형별 종합조사표의 개발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장애유형‧장애정도 사이의 유․불리를 따지는 등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산확대를 통한 서비스 총량이 반드시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장애유형‧장애정도끼리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단순히 ‘장애등급’이란 용어의 폐기가 목적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맞춤형 지원체계로의 전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