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Focus 4>
이제 ‘탈시설 전선’에서 비장애중심주의 사회를 이동시키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박경석
정부는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라 부른다. 정부가 ‘장애인의 날’을 제정한 역사는 1981년이다. 그해는 전두환이 군산 쿠테타로 권력을 찬탈한 비극적인 해이다. 전두환은 찬탈한 권력을 미화하기 위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민주복지국가건설의 새시대지표」라는 이름으로 ▲ 민주정치의 토착화, ▲ 복지국가의 건설, ▲ 정의사회구현을 슬로건을 발표하였다.
그 시기 국제적으로는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부각 된 시기였다. 유엔은 1975년 「장애인의 권리 선언」 채택,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로 지정하고, 그 후속 조치로 1982년12월3일에 「장애인에 관한 세계행동계획」 채택, 1983년부터 1992년까지를 ‘세계 장애인 10년’으로 선포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사회에서도 일정한 영향을 주게 되었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민심 무마용으로 내세운 ‘복지국가구현’의 구호와 죽이 맞았는지 1981년 4월20일을 한국에서 제1회 ‘장애자의 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그해 6월5일 휴지조각에 불과한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하고 시행한다.
4월20일은 1954년 한국불구자복지협회(현 한국재활협회)로 시작한 단체가 1968년 한국신체장애자재활협회로 개칭하여, 1972년 4월20일 정기총회와 함께 제1회 ‘재활의 날’ 행사를 개최한 날이다. 전두환은 관변 장애인단체 정기총회 날을 ‘장애자의 날’로 바꾸어 기념하기 시작해서 현재의 ‘장애인의 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매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시혜와 동정의 역사’를 상징하는 날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군사독재정권이 미사여구로 던져준 떡고물에 갇혀 장애인들의 권리는 철저히 우롱당했던 것이다. 그 치욕의 역사는 이 정부와 사회로 하여금 장애인에 대한 격리·배제·소외의 차별을 묵인하고 방조하게끔 했던 역사였던 것이다.
2001년 오이도역 수직형리프트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를 시작으로 장애인이동권연대가 결성 되어, 2002년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부르며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단결하여 투쟁하는 날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2021년은 ‘장애인의 날’은 41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은 20년이 되는 해이다.
장애인 권리를 투쟁으로 노래하고, 비장애중심의 사회기준을 이동시키자!
이 사회는 ‘능력에 따른 공정한 차별(=능력주의)’ 즉 능력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공정한 사회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능력주의를 기반한 공정성 담론에 많은 비판과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회의 평등’과 ‘능력에 따른 차별’로서 공정성은 장애인에게 매우 적대적인 사회적 조건을 조성하였다. 이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존롤스는 “우리는 공정한 협력체계로서의 사회라는 개념에서 시작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 정상적이고 충분히 협력적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영구적인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를 지닌 이들은 제쳐둔다”고 밝히고 있다.
심각한, 영구적인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부분은 ‘장애인거주시설’에 지역사회와 격리되어 집단적 수용상태에서 살아간다.
장애인의 권리를 투쟁하고 노래한다는 것은 장애인에게 적대적인 사회적 조건을 조성하는 능력주의와 비장애중심주의를 철폐하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토지에서 쫒겨났지만 새로운 공장체계에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은 ‘부랑자(vagabondage)’가 되어 ‘구빈원(workhouse)’에 일정한 훈육의 과정을 거쳐 임노동 관계로 편입시키기 위한 국가가 운영한 강제수용소 살아야 했다. 장애인이라는 범주는 바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형성되었다.
구빈원에서 아동, 병자, 광인, 심신결함자, 노약자를 특별히 중요한 다섯 개의 범주로 설정하고, 이들에게 ‘일할 능력이 없는 몸(the disable-bodied)’라는 꼬리표를 부여했으며,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일할 능력이 있는 몸(the able-bodied)’로 꼬리표를 부여하여 그들을 노동능력자로 간주하였다.
이때 노동능력자는 그대로 구빈원에 남겨져서 일정한 훈육의 과정을 거쳐 임노동 관계로 편입되었고, 아동은 근대와 더불어 출현한 공교육시스템(학교)로 맡겨졌으나, 나머지 네 범주의 사람들은 별도의 시설로 다시 보내버렸다. 그것이 바로 장애인수용시설의 기원이 된 것이다.
노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이들을 시설에 격리하는 것과 동시에 형성된 개념과 범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바로 능력이 없는 사람(장애인, people with disabilities)이다. 그 반대편에 능력이 있는 사람(비장애인, people with abilities)이 있다.
지금까지 시혜적인 떡고물 예산은 비장애중심주의(ableism) 능력사회에 편입을 전제로 장애인들을 맹목적으로 줄 세운 자원이었을 뿐이다. 장애인 중에서도 재활이 가능한 장애인들 중심으로 활용되기도 부족한 예산이었다. 그래서 장애인들끼리도 생존을 위해 쥐꼬리만한 예산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매몰되어야 했다.
최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장애인권리협약 제7조(노동권)에 관한 일반논평8을 준비하면서 기존 법률에 포함되어 있는 ‘근로능력’과 ‘고용불능’ 개념 철폐와 노동에서 ‘의료적 적합성’요건 등을 제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1년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이 20년이 되었다. 이제 장애인에게 적대적 사회조건을 조성하고 있는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를 철폐하자. 그것은 실행하는 많은 과제 중에 이번 420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중점 과제는 장애인을 수용하는 시설을 폐쇄하고 지역사회로 공간이동 시키는 탈시설 전선이며,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여 근로능력 기준을 폐지하는 서울시가 시행하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를 제도화시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