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야기 1>
친정엄마처럼 편안한 경남여성장애인연대....
경남여성장애인연대
박정원 상담원
겨우내 움츠렸던 모든 것들이 기지개를 피며 봄소식을 알리듯 창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의 나무들도 하나둘씩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경남여성장애인연대와 함께 한지도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13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어 보았지만, 사회복지 경력이 없는 터라 취업을 하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았습니다. 서류전형에서조차 연락이 오지 않아 상심이 컸던 차에 경남여성장애인연대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고, 면접을 본 후 그 당시 대표님으로부터 직접 합격 전화를 받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문득 그때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입사 얼마 후, 제 이름이 적힌 명함을 주셨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본 명함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게 새롭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지만 먼저 활동하고 계신 활동가들이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시고 배려를 해 주신 덕에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한 ‘활동가’라는 역할에 대해서도 생소했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여성과 장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활동을 하면서 많은 가치관 충돌과 의식의 변화를 거쳐야 하는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결혼 이후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고 부설기관인 경남아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활동지원사업 전담인력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장애인들의 자립에 있어 활동지원서비스의 필요성과 자립생활지원, 장애인식개선, 장애인들의 공평한 사회참여기회 등과 관련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3년 정도 경남아자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을 하다가 다른 일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2016년도에 퇴직을 하여 잠시 노인요양 관련 업무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2018년도에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로 재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만둔 직장에 다시 재입사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제가 간절히 원할 때 또 다시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경남여성장애인연대 식구들 모두에게 늦게나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되돌아보면 경남여성장애인연대 회원들과 1박 2일 설악산 나들이 갔을 때가 생각이 많이 나고, 420행사, 이동권 확보를 위한 천막농성 등 장애인의 권리확보를 위한 활동은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는 부설기관인 경남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서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장애인은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차별을 겪고 있고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변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성장애인에 대한 정책이나 시선에 있어 여성장애인들의 삶의 질은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로, 차별적이고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점들을 여성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장에서 함께 뛰고 있는 활동가들의 의지와 노력도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언젠가 여성장애인 평생교육 관련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오신 모 자립생활센터 소장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비록 장애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 현장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라면 장애인당사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평소에 ‘활동가’라는 역할에 대해서 스스로 의식화되지 못하고 주체적이지 못한 나 자신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항상 불편했는데 그 말씀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어느새 장애인 당사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걸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경남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서 3년 넘게 여성장애인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상담과 치료회복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저 또한 많은 것을 배우고 함께 성장하며 장애와 여성장애인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장애인성폭력피해자 치료회복프로그램 진행을 담당하면서 처음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는데 걱정과는 반대로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해맑게 웃는 모습,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발표하려는 모습, 서로 토닥여 주고 위로해 주는 모습,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보람도 있고, 지치고 힘들 때 제가 다시 힘을 내어 다시 뛸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렇듯 경남여성장애인연대는 저에게 있어 직장을 넘어서 언제 찾아와도 반갑게 반겨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친정엄마와 같은 존재입니다.
작년에는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19로 인하여 모든 일상이 멈춰버린 듯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이 일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에 우울한 생활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행복한 일상을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개인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서 회원모임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코로나19 이전의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