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Focus 2>
여성장애인의 가정폭력의 특성과 방안에 대한 고민
사단법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구지부 대구여성장애인연대
이정미 대표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 사회의 인권에 대한 고민은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한 가지 의미는 지나간 과거에는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사람들의 각성이 이어지고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당연한 사회적 흐름이라 여기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많이 민감성이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역사적, 사회적인 뿌리가 깊어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는 폭력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 뿌리가 깊다 보니 파면 팔수록 끝이 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형태로 그 뿌리를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그 중에서 가장 뿌리 깊은 것이 가정폭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성폭력이다.
가정폭력은 가족이기에, 혈육으로 동일화된 집단이기에, 가족 개개인에게 이루어지는 폭력이, 폭력 피해를 보는 본인이 드러내지 않으면, 주변 사람에 의해 발견되지 않으면, 계속해서 가족 내의 문화 내지 당위성을 가진 갈등구조로 자리 잡는다. 사실 가정폭력은 가장 사랑받고, 가장 지지 받아야 할 가족에게서 이루어지는 폭력이므로, 잔인하고 무서운 폭력이다.
가족구성원으로서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 폭력을 행한다. 그리고 그 폭력은 당위성을 가진다. 가족을 폭력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나름의 힘듦을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가족이기에 내가 보듬고 책임지며 살고 있다는 맥락의 이야기들을 듣기 시작한다. 폭력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가 제대로 가족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못하기에 답답한 마음을 질책으로 풀어낸다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고 있는 가정폭력이 장애인 가정폭력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가 지지해 줄 이유가 아니라, 애물단지처럼 취급받을 이유가 되는 것이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가정폭력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 자체가 어둡고 부정적인 사회분위기와 장애를 개인 내지 가족의 문제로 생각하는 기반위에서 나의 자녀가, 나의 배우자가, 나의 형제가, 혹은 나의 부모가 장애인이라는 현실은 나머지 구성원에게는 책임감, 부담감, 벗어날 수 없는 족쇄로 와 닿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갈수록 경제 양극화를 달리게 하고 삶의 질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에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경제적인 역할을 하면서 가족의 경제적, 질적 삶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상당한 갈등 속에 가족들은 지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장애를 가진 가족은 이런 경제적인 역할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거나, 미미한 역할을 하는 상황이 많이 이루어지기에 당연히 갈등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성장애인 가정폭력은 여성으로서 받는 뿌리 깊은 폭력과 가족구성원으로 장애인이 자기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이 교차되는 폭력이기에 가장 무거운 폭력이다.
위에서 언급한 장애인에 대한 성숙하지 않은 가족 개인이 행하는 무시, 편견, 차별은 장애인에 대한 성숙하지 않은 사회적인 인식에서 시작된다. 이런 인식에서 여성장애인들은 의존적인 삶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 친인척까지 폭력을 가하도록 한다. 대부분의 폭력의 형태는 언어폭력이 가장 많고 그 다음, 무시하거나 구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실태를 조사한 자료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폭력의 드러난 양상이나 상담의 질적인 부분을 통계의 기초로 삼았을 때, 정서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리를 지르거나 무시한다’, ‘장애와 관련해서 욕이나 심한 말을 한다’, ‘화를 내면서 집기를 부수거나 물건을 던지면서 위협한다’, ‘시설에 입소하기를 강요한다’, ‘나와 관련된 일을 가족들이 대신 결정한다. 결혼하는 것, 임신, 양육, 시설입소, 먹는 것, 입는 것 등’, ‘돈을 벌어 오라 하거나 돈을 못 번다고 비난한다’, ‘집을 나와 독립생활을 하는 것을 반대한다’ 등이다. 드러난 양상이나 상담의 질적인 부분을 통계의 기초로 삼았을 때 전체 여성장애인이 10명 중에 2~3명은 이 피해 경험을 간직하고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발달장애 중에 지적장애 여성들에 대한 폭력 피해가 다른 여성장애인 유형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적 장애의 특성상 신체적인 부분은 비교적 자유로우나 인지적인 부분에서 부족함 때문에 가정폭력과 함께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현장 경험상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사실 여성장애인 성폭력과 여성장애인 가정폭력은 그 경계가 없다. 그 말은, 성폭력으로 사건이 접수되어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가정폭력이 더 심각한 경우, 가정폭력으로 상담을 접근해 보면 그 안에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장애인들을 경제적인 역할에서 제외되는 가족구성원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무시와 차별을 가하면서도,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사회구조 속에서는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성적인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역량만이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없다. 개인에게 힘과 지지를 보내는 작업과 동시에 폭력 피해 여성인 여성장애인들을 그 환경과 철저히 분리하여, 천천히 가더라도 자립생활을 하도록 케어하는 시스템이 주어져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여성장애인들이 가정폭력 피해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방안에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첫 번째, 여성장애인의 역량을 올릴 수 있는 교육 기회 증대 및 참여도모를 위한 교육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여성장애인들의 능력강화교육, 자아존중감 향상을 위한 교육, 전문적인 직업교육, 원만한 대인관계 교육들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가정폭력에 관련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참여하도록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표현 및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스트레스 관리법에 대한 교육, 부부 갈등 치료 프로그램 교육 이혼에 대한 올바른 의식 및 시기 적절성 등에 관한 교육, 여성장애인 가정폭력의 개념, 유형, 대처방안 등에 대한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경제적 지원체계를 확충해야 한다. 여성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도모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 개선을 위한 경제적 지원,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의한 취업 확대를 제공해야 한다.
네 번째,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해 시간과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이혼 법적 처리의 신속성을 위한 법적 지원체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섯 번째, 여성장애인 피해자를 위한 쉼터나 보호시설을 현재보다 확충하여야 하며 생활비와 주거관리비가 지원되는 그룹홈이나 공동주택 등 주거공간 지원체제의 마련이 절실하다.
여섯 번째, 예방 및 치료 지원체제가 필요하다. 여성장애인 가족방문 및 관리 제도를 더욱 확충해 나가는 것, 여성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개별상담, 부부상담, 가족상담 등의 다양한 상담 접근방법을 통해 예방과 치료를 이루어 나가는 또한 절실한 과제이다.
여성장애인들이 가정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장애가 가족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지원체계의 문제이며 건강한 사회 통합을 이루어나가는 과제의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성장애인들의 장애가 여성으로서의, 혹은 한 사람으로서의 역할 부족의 원인으로 인식되거나 여성으로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쉽게 성적 대상화에 노출되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장애인의 인권은 이런 폭력으로부터 여성장애인들을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사회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 그 민감성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만큼 여성장애인 폭력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바래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