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사태에서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것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연구원
학교에서의 광범위한 딥페이크가 문제된 직후에는 여학생들을 모아놓고 SNS 프로필 사진을 삭제하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예방’해온 전통적인 방법과 다르지 않다. 피해 가능성이 있는 인구 집단에게 피해를 입을 기회를 차단하도록 하는, 가해의 예방이 아닌 피해의 예방이다.
교육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발빠르게 제공한 딥페이크 교육 자료들 또한 같은 맥락에 있었다. 카드뉴스 형태의 자료에 담긴 내용은 간결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속하는 범죄의 유형을 보여주고, 법적 처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다음에는 피해 가능성이 있을 때, 피해를 입었을 때 신고 또는 상담하라는 조언이 뒤따른다. 피해자의 행동 요령이다.
가해 행위는 처벌에 대한 위협을 통해 억제하고, 피해를 발견하여 구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벌 위협은 효과가 있을까? 그동안 성적 합성의 법정형이 ‘7년 이하의 징역’이 아니라 ‘5년 이하’였어서 만연했던 걸까? (주: 2024년 10월 법 개정에서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에서 7년 이하의 징역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실제 선고형은 훨씬 낮다)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의 성적 이미지는 죄의식 없이 공유되어왔고 남성 커뮤니티 내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남성성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익명성의 공간에서 가해자들은 ‘절대 안 걸린다’며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는 확신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서로를 독려했다. 가해 행위의 언론 보도를 기념하여 수행된 피해자 박제처럼, 범행이 드러난 것은 오히려 트로피가 되며 처벌에 실패한 법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처벌되는 행위의 나열은 공허하고, 신고하라는 조언은 피해자를 더욱 무력하게 한다. 잠재적 피해자가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다.
범죄를 강조하는 ‘예방’ 자료에서 딥페이크를 비롯한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는 특별한 범죄자로 가정된다. 우리 일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악의적이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존재인 양 설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딥페이크 사태야말로 디지털 성범죄가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용인되는 행위로서 만연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가까운 사람마저 성적 모욕의 대상으로 삼고 비인간화하는 일은 이 사회에서 왜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제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성폭력인가.
성폭력은 단지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고 공유하는 행위만이 아니다. ‘능욕’ 대상을 물색하고 그들의 일상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성적 존재로 격하시킬 아이디어를 모으고 성적 합성물을 생성하고 공유하며 성적으로 모욕하고 비하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지배와 권력의 감각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이 성폭력을 구성한다. 그 결과 특정 개인에 대한 능욕뿐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혐오를 촉진하고 성적 지배를 정당화하게 된다. 딥페이크를 비롯한 디지털성폭력에 대한 비판과 ‘예방’이 향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