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야기 1>
어느 날 수업을 마친 후 집으로 가던 중 있었던 황당한 일...
이수진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 광주지부 광주여성장애인연대 회원
먼저 이렇게 여장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심신이 위로 받고 몸 기능도 회복이 되며 우리들에게 이런 즐거움의 터전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성 장애인 연대에 가입한지도 어언 십 오년이 가까워 온 것 같다.
뇌수술 후 편 마비로 심한 장애가 되어 날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으며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인해 장애인 연대를 가입을 했다.
몸의 통증도 많고 장애의 불편함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움이 많았지만 여장에 모임도 나가고 또 자존감을 높여주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다보니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 또한 마음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모든 세상들이 달라져 보이며 행복한 생각이 들었다.
가족도 없이 생활하다 장애인 연대를 나가다 보니 처음엔 서먹했지만 지금은 연대의 식구들이 나에겐 가족처럼 느껴지고 너무 좋았다. 장애인들의 평생교육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다양한 수업을 하며 지금은 원예와 독서모임 우쿨렐레를 배우러 다니고 있는데 몇 년 전에 내게 참 황당한 일이 있었다. 지금도 그 일이 잊히지가 않아 글로 옮겨 본다.
어느 날. 나를 도와주던 도우미가 재봉을 배웠는데 장애인연대를 다니려면 이런 비옷이 있어야 한다고 첫 작품을 내 비옷을 만든 것이었다. 색상은 짙은 주황색으로 눈에 확 띠는 너무 환한 색상이었다. 전동 휠체어를 통째로 감쌀 수 있게 하고 앞 지퍼를 가슴 위에서 부터서 밑에까지 길게 달아 통으로 입을 수 있게 잘 만들었다.
‘나는 뒤에 비치된 가방에 담고 그 비옷을 써먹기 위해 비가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황당한 일이었지만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휠체어가 크기 때문에 큰 우산을 써야하니까 큰 우산을 가지고 다니기는 힘들었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여장 갈 때 교통약자를 타고. 올 때는 주로 교통 약자 편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올 때가 많았다. 비가 한 방울씩 내릴 때는 그냥 전철로 올 때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 날은 내가 좋아하는 즐거움의 우쿨렐레 수업이 끝난 후 교통약자 편도 신청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출발 할 때 비가 어쩌다 한 방울씩 내렸는데 그렇게 심하게 쏟아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은 채 여장에서 나왔다. 조금 오다보니 금방 비가 억수로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 비옷을 꺼내 휠체어까지 덮은걸 입고 오는데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힐끗힐끗 다 쳐다보는 게 아닌가 창피했지만 속으론 흐흐흐 흐흐흐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그 빨간 걸 전체에 뒤집어쓰고 충장로 길을 활보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참 볼 만 했다.
그러나 막상 우쿨렐레를 안고 비옷을 뒤집어썼지만 걱정되는 건 우쿨렐레였다.
전철 타는 곳 까지만 가면 되겠지 하고 쌩쌩 달리는데 비는 완전 박게스로 들이붓는 것처럼 계속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래도 전체를 감싼 비옷이기에 처음엔 안심하고 그냥 달렸는데 전철을 타고 보니 머리에서부터 목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려 속옷 전체가 다 젖어 그 빗물은 꼭 소변을 본 것처럼 밑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전철 안에서도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데 얼마나 창피한지.....
전철에서 내렸을 때도 비는 그치지 않고 눈앞을 가릴 정도로 계속 쏟아져 내렸다.
그렇지만 휠체어는 더욱 미끄러지듯 더 쌩쌩 잘만 달리는데 신이 났다. 나는 계속 기도를 하며 ‘이제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하나님 집 앞에, 집 앞에 엘리베이터 까지만 이라도 휠체어가 멈추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중얼거리며 계속 기도를 하고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도 불안하지 않고 편안했었다.
그렇게 간신히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는데 층을 누르고 올라가려 하니 아뿔싸!!
휠체어는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엘리베이터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정신을 차려보니 늦은 봄쯤 이었지만 온 몸은 떨리고 너무 추워 굳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데 주위 분들 도움으로 전동휠체어를 수동으로 바꾸고 간신히 밀고 집에 들어와 제일먼저 우쿨렐레가 걱정이 되어 점검을 해 보았는데 우쿨렐레 케이스가 잘되어있어 우쿨렐레는 다행히 아무 문제없었다. 마음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휠체어는 전체를 닦고 드라이로 아무리 말려 봤자 그 이튿날이 되어도 휠체어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구 청호 헬스케어에 전화를 해서 수리를 부탁했는데 빨리 올 수가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고쳐 줄 때 까지는 내 발은 묶여 있어야 했고 그 일로 감기몸살이 심하게 나서 며칠간 많이 아팠었다. 당분간 내 가족 같은 여장에도 몸이 아파 나갈 수 없어 어떻게 할까 하고 있다가 휠체어 멈춘 지 3일째 되던 날 우연히 휠체어 불을 켜보니 불이 켜진 것이다.
그리고 휠체어가 움직였다. 이제 여장연대에도 갈 수 있다는 기쁨에 얼마나 마음으로 반가웠는지 모른다.
‘여성장애인 연대는 내겐 큰 힘이요 정말 고마운 나의 삶의 터전이다.’
장애가 되어 서럽고 힘든 날들을 자신을 비관하며 고통 속에서만 보낼게 아니라 이런 좋은 우리들의 터전이 있어 여러 가지 배움을 통해 자존(自尊)감도 높이고 또 배워서 남 주자는 마음으로 작은 꿈을 향해 도전하며 살 것이다.
지금도 여장엘 가는 날이면 여장식구들을 만나는 반가움 즐거움에 마음이 설레 인다.
지금은 우쿨렐레 연주도 곧 잘 하고 또 책을 읽고 독후감 쓰는 것도 빠지지 않고 하면서 수요일 오후가 되면 원예를 하는데 난 꽃꽂이를 배워 본 적이 없지만 꽃을 너무 좋아한다.
원예수업 날이 다가올 때면 오늘은 무엇을 할까 내심 기대가 되고 시간이 기다려진다.
원예선생님이 생화의 예쁜 꽃들로 주제를 다양하게 느무느무 멋지게 하시기 때문에 그 시간이 참 행복하다.
앞으로도 우리 여성장애인들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긍지(矜持)를 가지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정신으로 소중한 마음의 꿈들이 이루어지며 많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좋은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