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지원법에 응답하라!
김효진 전)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
장애여성지원법의 필요성
장애여성의 요구와 경험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관련 법률의 제개정 등 정비가 필요하다. 장애여성이 자조단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미처 가다듬기 전에 제정된 장애인복지법,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등은 장애여성의 요구와 경험이 반영되기보다는 장애여성의 요구가 생물학적 조건에 기반해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임신, 출산, 양육, 성폭력에 집중되어 있거나 장애여성의 복지향상과 사회참여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장애여성의 의견을 반영해 단독조항을 반영할 수 있었던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장애여성의 다양한 차이와 감수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결과 다소 추상적이거나 선언적인 조항이 존재한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국회의원이 발의하게 된 장애여성지원법에서는 장애여성이 겪는 다중차별로 인해 추가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들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장애여성의 성인권, 임파워먼트, 건강, 교육, 고용 등이 그것이다. 이들 의제가 딱히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기존 프로그램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홈헬퍼 서비스를 예로 들면 상당한 역사에 비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제도로 안착되지 못하고 지자체별로 산발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여성지원법이 필요한 이유는 기존 법률에 성인지 관점이 빠져 있기도 하며 실효성이 없기도 하며, 무엇보다 장애여성에게 어느 하나라도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 종합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절박함이 있어서다.
장애여성지원법의 내용
장애여성지원법은 2010년 18대 국회에서 장애여성당사자인 곽정숙 의원에 의해 발의된 바 있다. 19대 국회에서도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과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하였지만 제정되지 못하였다. 이어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으로 ‘장애여성지원법 제정’이 포함되었다. 20대 국회에 장애여성 당사자인 최혜영 의원이 진출한 것을 계기로 장애여성지원법은 재논의되기에 이르렀다.
장애여성단체들은 2021년 4월 29일 ‘장애여성지원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 개최를 계기로 치열한 논의를 거쳐 법률명을 장애여성지원법으로 정하고 주무부처를 보건복지부로 합의하였다. 장애여성단체들이 마련한 장애여성지원법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애여성지원법은 장애여성 지원에 관한 종합적인 계획 및 시책을 수립·추진하도록 하여 장애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안 제1조).
둘째, 보건복지부장관은 장애여성의 권익과 복지증진을 위하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3년마다 장애여성정책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였다(안 제6조).
셋째, 장애여성을 위한 종합정책을 수립하고 관계 부처 간의 의견을 조정하며, 그 정책의 이행을 감독·평가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장애여성정책조정위원회를 두도록 하였다(안 제7조).
넷째, 장애여성을 위한 교육 지원, 모성보호와 보육 지원, 성·재생산 건강 지원, 고용 지원, 성폭력·성매매·가정 폭력·학대 피해 지원, 성인권교육 지원, 가족 지원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였다(안 제9조부터 제15조 까지).
다섯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여성에 대한 종합적인 지원을 수행하는 장애여성종합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안 제19조).
장애여성지원법 제정을 위해 넘어야 할 장벽
장애여성지원법이 발의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제정을 위해서는 돌파해야 할 장벽이 여전히 존재한다. 첫째는 장애여성 단독 법률을 만들면 다른 장애 유형들도 모두 단독 법률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는 반대 논리이며, 둘째는 장애여성 단독 법률에 담겨 있는 장애여성종합지원센터 설치를 위한 예산에 대한 부담 문제이다.
그러나 장애여성은 다른 장애 유형과 달리 장애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이므로 장애여성 단독 법률이 제정되면 15개 유형 모두 단독 법률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는 과도한 우려이다. 또 장애여성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하기 위해 예산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다중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을 투여하는 것이 왜 부담스러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기준으로 전체 등록장애인 2,618,918명 중 10%가 안 되는 24.2만명을 차지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제정된 후 서비스 지원체계를 갖춰 나가고 있지 않은가?
현재의 장애인 지원정책을 활용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론도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의 지원정책을 활용해 장애여성에 대한 지원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그 결과 차별이 얼마나 줄었는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부처가 과연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장애여성단체들은 장애여성지원법 제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장애여성지원법을 제정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는 것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요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