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코로나 시대, 다중적 차별 철폐 목소리? 더 높여야
더인디고 발행인 조성민
바쁜 하루의 시작에도 마스크가 우선순위가 된 지 오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위협 때문에 시작됐지만, 이젠 일상이 됐다. 전쟁과 같은 난리 속에서도 동네 ‘24시간 식당’의 불은 늦은 밤을 밝히기 시작했다. 식당 일을 그만두어야 했던 분의 얼굴도 아주 오랜만에 마주했다. 마치 마스크 사용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하지만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코로나)에도 바이러스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느새 국가들은 ‘코로나 종식’ 혹은 ‘위드코로나’를 선언했지만, 매일 재확산 소식이 들리곤 한다. 새 정부도 코로나가 경제, 사회 전반의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어쨌든 코로나 이전을 ‘BC시대’로, 이후를 ‘PC시대’로 구분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 전환점인 ‘위드코로나 시대’의 위기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 기나긴 위기의 시대를 지나며 ‘재난은 장애인에 더 불평등하다’는 것만큼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인정하는 메시지를 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이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소위 ‘사회백신’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당장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는 것이 우선일 수 있다. 그렇다고 장애인에겐 수십 년간 누적된 차별과 불평등에 코로나까지 얹히면서 응급처방만 해왔다.
불평등과 차별이 주관적이라고? 그렇지 않다.
지난 8년(2012~2019) 동안 교육, 자산, 노동, 주거, 건강, 사회보장 등 다차원 영역에서 장애인의 빈곤율은 34.1%로 비장애인 11.35%의 3배 수준이다. 특히 건강과 노동, 주거는 빈곤 진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2021.6)가 뒷받침한다.
‘여성’과 ‘장애’가 만나 다중적·교차적 차별에 놓인 여성장애인은 어떤가.
여성장애인은 다양한 형태의 성적피해와 불안정한 소득과 일자리, 과도한 가사노동과 육아, 그리고 가족 돌봄 등 불평등한 구조 속에 놓였지만, 코로나 이전의 평화로웠던 시대?에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여성장애인의 목소리는 ‘위기’의 이름으로 완전히 묻혀야 했다. 그렇다고 냉동고 속에 갇힌 듯한 여성장애인의 목소리가 위드코로나 시대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 않은 이유다.
실제 지난 1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빈곤과 불평등의 지표는 코로나19 시대 이전보다 더 확산됐다. 여성 가운데 15.5%는 단축근로를, 0.9%는 유급휴직을 경험했다. 무급휴직 3.3%, 실직 6.5%, 휴업 4.3%, 폐업 0.6%다. 반면, 남성은 무급휴직 1.7%, 실직 3.7%. 휴업 3%, 폐업 0.4%처럼 치명적인 근로 단절은 여성보다 적었고 단축근로는 17.4%로 더 많았다.
위기의 시대를 맞아 여성은 가정에서뿐 아니라 고용과 산업현장에서도 더 위협을 받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다.
그렇다고 현 정부의 임기가 불과 몇 개월 남은 상황에서 국가가 대신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이러한 연구조차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서만 이뤄졌다. 실제 인구의 반 그리고 그 반의 15%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장애인에 대한 코로나 속 차별실태는 그저 기존의 조사를 통해 유추할 뿐이다.
지난 4년을 돌아봐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성평등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국정 운영과정에서 역대 정부 처음으로 여성 각료를 30% 이상 임명했다. 젠더 폭력의 국가책임제도 강화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국가정책은 일부 명망가 중심의, 마치 토크니즘(tokenism) 식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토크니즘은 조직이 성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여성 리더를 한 명 정도 관행적으로 임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국가정책이 민간기업을 포함한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하지도 않았다. 공약이었던 여성장애인법 제정은 오간 데 없다. 여성장애인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단 두 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적 연대의 이유다.
지난해 4월, 국제장애연맹(IDA)과 유럽장애포럼(EDF)은 팬데믹이 여성장애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각국의 다양한 여성장애인 패널들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한 여성 패널은 마땅히 누려야 정치적 권리도 그렇다고 성차별을 논하는 과정에서도 여성장애인이 겪는 다중적 혹은 교차차별은 간과된다고 말했다. 여성 속에도 여성장애인 및 청(소)년 여성은 토크니즘적으로 이용될 뿐, 가시적이거나 주류화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단 코로나 이전에도 있었던 불평등이, 팬데믹 상황에서 교차적 차별에 노출된 여성장애인의 목소리는 더 소와됐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에서 위드코로나, 다시 일상의 삶으로 전환하면 뭔가 나아질 것이라는 꿈을 꾼다. 하지만 장애인, 특히 여성장애인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새 대통령, 새 정부만을 예의주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위드코로나 속 여성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정치, 사회적 이벤트가. 3월, 6월, 8월 연이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대 대통령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이벤트는 그동안 가려진 여성장애인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담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 대선공약이었던 여성장애인기본법의 재추진은 물론이다. 여성장애인의 불평등과 안전권은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와 노동시장 접근성, 그리고 각종 지원제도 등을 통한 양육과 가족 돌봄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6월은 어떤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앞서 21대 국회는 절반 이상이 초선의원이고, 역대 최다 여성 의원(57명)을 배출했다. 4년 만에 장애인 비례대표 3명이 여야 다수당에 진출했다. 제도권, 즉 전국 기초, 광역의회에 진출함으로써 여성장애인 정치세력화를 노려볼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8월이면 한국 정부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심의가 8년 만에 이루어진다. 이번에 제대로 짚지 않으면 밀리고 밀린 국가들에 의해 또 8년? 어쩌면 10년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부터 여성장애인의 실상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작업을 충분히 준비, 이날 국제사회에 알려내고 또 권고를 끌어낼 절호의 시간이다.
자못 중요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결코 ‘적극적인 국가’에서 살아보지 못한 국민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했지만, 딱 거기까지다. 국가는 그럴 때마다 ‘예산’과 ‘위기’ 혹은 ‘우선순위’를 방패 삼아 뒷걸음쳤다.
그렇다면 목소리를 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여야 할 때다. 그것도 높여서만 될 일은 아니다. 여성장애인간의, 국내·국제 시민사회 간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단순히 손잡는 수준의 연대가 아니다. 발로 함께 움직이는 결속과 전략적 행동을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훗날 같은 이야기를 또 할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