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별 문화추천 1>
인생 여행지 삼척, 해상케이블카와 용굴 촛대바위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버킷리스트(인생숙제)가 있다.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해 마음속에 저장해 숙제들을 하나씩 꺼내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일상에 치여 꿈조차 희미해질 때 가끔 꺼내 새롭게 다짐하는 버킷 리스트. 인생 숙제를 하나하나 이루는 것은 그 어떤 가지보다 삶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영화 “나의 버킷리스트”에서는 가난하지만 한평생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정비사와 자수성가로 백만장자가 된 괴팍한 성격의 사업가가 만나 그들의 인생숙제를 위해 떠난 인생여행 이야기다. 도통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과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여행 친구로 어울리지 않는 두 주인공은 풍경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하는 여행으로 세렝게티 초원에서 지프를 타고 다음 날엔 피라미드 앞에 앉아 여행에서 얻는 것들을 공유하며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인생친구와 인생 여행의 이야기다. 이렇듯 여행은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여행하며 겪는 싱싱한 경험을 돈 주고 사는 소비 행위다.
무장애 여행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도 여행함에 있어 소비자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관광산업의 한 축으로 인식되어야 무장애 여행의 권리가 확장된다. 무장애 여행은 가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집밖으로 나서야만 온전한 나의 여행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날 수 있는 무장애 여행 환경이 늘어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보니 인생숙제를 실천할 수 있는 여행의 기술도 필요하다. 장애인에게 여행은 꼼꼼하고 촘촘하게 준비해두어야 느닷없는 여행일지라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그동안 코로나로 미뤄왔던 자유로운 일상이 예방접종률이 높아지고 여름 휴가철과 겹치면서 여행의 욕구도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경직됐던 욕구가 보복여행으로 한꺼번에 분출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그런 부작용에도 무장애 여행을 떠나려면 전략적이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소비자로서 권리를 확실하게 누리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백신접종률이 높은 일부 국가는 자가 격리를 면제하는 등 해외여행 재개를 위한 환경이 조금씩 조성되고 있어 자유로운 여행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무장애 여행환경도 좀 더 발전적이어야 장애인 등 관광약자의 여행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무장애 관광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무장애 관광지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휠체어 사용 여행객은 이동이 용이한 곳에 따라 가고 싶은 여행지와 가기 편한 여행지로 구분된다. 기차로 이동가능하고 장애인 콜택시가 즉시콜 이용 가능하면 관광 자원이 빈약해도 여행하기 편리한 곳으로 분류된다. 더욱 편리한 무장애 여행지는 기차에서 내려 따로 이동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여행하기 편리하고, 관광자원까지 풍부하면 최고의 무장애 여행지로 꼽힌다. 그런 여행지는 국내에서 그리 많지 않다. 두 번째로는 기차역에서 즉시콜 타고 원하는 여행지로 이동해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장콜 연결이 관건이어서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해야 한다. 예약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기차를 못타는 위험은 덜한 편이다. 동계올림픽 이후 ktx가 강릉, 정동진, 동해까지 운행되면서 여행하기 편리한 곳으로 추가됐다. 서울역에서 오전 7시 ktx를 탔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알아 챈 듯 햇살은 밝게 웃어주고 세상은 온통 진녹색으로 도배됐다. 열시가 안 되어 종착역인 동해역에서 기차가 멈췄다. 동해역에서 장콜을 타고 삼척으로 향했다.
삼척은 바다와 산, 동굴, 해안도로까지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여행 할 곳이 많은 삼척이지만 그동안 접근성이 녹록치 않아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여행하기 불편한 곳으로 분류됐었지만 동해역까지 기차가 운행하면서 삼척 여행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번 삼척 여행은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는 장호항과 용굴 촛대바위다.
장콜은 해상 케이블카가 있는 용화역으로 이동했다. 용화역은 장호역과 연결되는 해상케이블카 정류장이다. 용화역은 장애인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5층의 카페와 스카이라운지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바다 풍경을 선물한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따듯한 커피를 사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시원한 바다가 어머니처럼 품어준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낀 일상의 안개들이 걷힌다. 푸른 바다와 눈 맞춤하며 멍 때리는 시간은 온몸의 세포들을 무장해제한다.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 오로지 바다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그렇게 바다와 만났다.
케이블카를 타러 4층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삼척 해상 케이블카는 정지형 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어서 휠체어 사용자도 안전하게 승하차가 가능하다. 전국에서 운행되는 케이블카는 두 종류로 운행된다. 정지형 케이블카와 순환형 케이블카다. 정지형 케이블카는 승강장에 일정 시간 완전히 정지해 휠체어 사용자도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다. 순환형 케이블카는 승강장에서도 천천히 움직이는 시스템이라 휠체어 사용자 등 신체적 약자는 안전한 승하차가 어렵다. 게다가 수동 휠체어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전동 휠체어 사용자는 케이블카 승차를 포기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수동휠체어로 갈아타고 케이블카에 승차한다 해도 팔이 불편한 장애인은 수동휠체어 롤링을 하지 못해 단번에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독립여행이 불가능하다. 다행이 삼척 해상케이블카는 정지형 케이블카여서 승하차를 하는데 전혀 문제없다.
평일이라 그런지 케이블카는 붐비지 않았다. 삼척해상케이블카는 용모양의 역사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용화역에서 장호역까지 거리는 874m로 이동하는 동안 케이블카 바닥으로 보이는 장호해변 풍경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 위를 걷는 기분이 이런 걸까? 유월의 햇살은 바다위에 수직으로 꽂히고 햇살 품은 은빛물결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인다. 시선을 수평선 쪽으로 돌리면 하늘과 맞닿은 바다는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다. 바다위에 떠있는 이 순간을 박제하고 싶다.
장호 항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장호역에서 장호항까지는 휠체어로 걷기에 좋은 길이다. 장호해변 한쪽엔 장호항이 있어 싱싱한 활어를 착한가격에 맛볼 수 있다. 장호 해변은 1키로 남짓해 산책하기 좋다. 장호해변을 따라 용화역 쪽으로 올라가면 동해바다를 끼고 있는 해파랑 길을 따라 휠체어로 라이딩하기 좋은 길이다. 해파랑 길은 부산 오륙도에서 출발하여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770km 동해안을 끼고 자전거 길이 조성돼 있다. 자전거가 달리면 휠체어도 달릴 수 있다. 해파랑길 삼척 구간은 황영조 길도 있어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삼척 내에서는 장애인 콜택시 즉시콜 이용도 가능하지만 탁 트인 동해바다를 보며 용굴 촛대 바위까지 8.3키로를 휠체어로 라이딩하기로 했다. 황영조는 해파랑 길을 따라 연습을 했다. 바다가 품어주는 해파랑길을 걷다 보면 황영조 기념 공원과 만난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용굴 촛대 바위다. 용굴 촛대 바위는 무장애 여행지로 핫한 곳이다. 용굴 촛대바위는 배를 타고 가야만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해안을 따라 데크로가 설치되면서 누구나 접근 가능한 여행지가 됐다. 용굴 촛대 바위에 얽힌 전설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어느 날 가난한 어부의 꿈에 죽은 구렁이가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때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서 죽은 구렁이를 데려가서 제사를 지내면 훗날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부는 노인의 말대로 죽은 구렁이를 데려가 정성껏 제를 지냈더니 훗날 좋은 일이 있었다는, 여차저차 시작하는 전설 따라 삼천리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용굴 촛대 바위로 가는 길은 휠체어 사용자도 걷기 편리하다. 바위둘레 50여 미터를 데크길로 만들었고 들어가는 초입부터 접근성이 완전 좋다. 풍경도 압권이지만 중간 중간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게 조형물을 설치했다. 처음 만나는 조형물은 돌고래와 동그라미가 조화를 이룬 액자다. 동그라미 액자에서 돌고래 두 마리가 헤엄을 친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조형물에 대한 스토리가 없어 어떤 의도로 조형물을 제작했는지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첫 번째 조형물을 지나면 흔들다리를 만난다. 흔들다리 중간은 강화유리를 통해 초곡 바다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볼 수 있다. 11미터 되는 흔들다리를 휠체어를 타고 건너는 동안 아찔하고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조금 더 걷다보면 드디어 촛대 바위와 거북바위를 만난다.
삼척의 촛대 바위는 해안가 접근로가 없어서 배를 타야만 볼 수 있었던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초곡 촛대바위가 마침내 멋진 모습을 뽐내게 된 것이다. 바로 옆 커다란 바위 꼭대기엔 거북이 한 마리가 올라가 있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는 예전부터 잡귀를 쫒거나 마을 사람들이 소망을 빌던 성스러운 장소다. 거북바위 앞에서 소원을 비는 여행객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어느새 유월의 마지막을 향해 간다. 곧 장마가 시작되겠지만 그럼에도 여름방학과 휴가를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들뜨고 있다. 코로나로 움츠러들던 마음들이 백신접종을 시작하면서 자유로운 여행에 대한 욕구들이 분출하는 것 같다. 삼척 해상 케이블카와 용굴 촛대바위는 무장애 여행지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가는 길
ktx 동해역 하차
강릉, 동해, 삼척 등 동해안 지역 관내 이동은 즉시콜 이용가능 하고 관외 이동은 하루 전 예약콜로 운영된다.
전화 1577-2014 강원도 교통약자 광역이동지원센터
-접근가능한 식당
장호역, 용화역 내
-접근 가능한 화장실
장호역, 용화역, 용굴촛대바위 앞